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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대사관에 걸린 ‘김정은 하노이 사진’ 트럼프는 쏙 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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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걸지 않았다. 대신 호찌민 묘소 헌화,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 회담 등 김 위원장의 베트남 공식 방문 사진만 내걸었다. [신경진 기자]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걸지 않았다. 대신 호찌민 묘소 헌화,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 회담 등 김 위원장의 베트남 공식 방문 사진만 내걸었다. [신경진 기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월 26일 부터 3월 2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 머물렀다. 2월 27~28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 나머지 이틀은 베트남 공식 방문을 위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 외부 게시판에 내건 사진만 보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아예 없던 일처럼 보인다.

북한 체제 선전하는 공개 창구 #1차 회담 땐 트럼프 사진 걸어 #2차 땐 김정은 방문 사진만 도배 #‘트럼프 사진 배제’로 불만 표출

18일 오전 베이징 차오양구(朝陽區) 북한대사관을 찾았다. 대사관 정문 동쪽의 게시판엔 김 위원장의 베트남 공식 방문 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북·미 정상회담 관련 사진은 없다. 김 위원장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응우옌 티 낌 응언 국회의장을 만나 회담하는 사진과 호찌민 묘에 헌화하는 사진, 공식 환영 만찬 사진 등만 게시됐다. 북한측으로선 예기치 못했던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불만을 ‘트럼프 사진 배제’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비핵화협상 중단’을 거론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지난 15일 평양 기자회견도 그 연장선상이다.

북한은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엔 주중 베이징 북한대사관 외부 게시판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사진을 대대적으로 실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엔 주중 베이징 북한대사관 외부 게시판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사진을 대대적으로 실었다. [연합뉴스]

주중 북한대사관의 외부 게시판은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중국 내 거의 유일한 공개 창구다. 이 게시판의 사진과 글이 북한 당국이 해외로 보내는 외교 메시지인 셈이다. 북한은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1차 정상회담이 열린 후인 지난해 7월엔 이 게시판에 트럼프 대통령 사진을 대대적으로 실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악수 장면, 단독 회담 현장, 북·미 공동성명 서명식, 화기애애한 산책 장면 등이 담겼다. 당시 베이징 외교가에선 “북한대사관 게시판에 미국 대통령 사진이 나온 건 처음일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사진 교체 이전에는 지난 1월 말 4차 북·중 정상회담 사진이 걸려 있었다. 북한 친선 예술단의 베이징 공연,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도착해 꽃다발을 받고 회담을 하는 장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앉아 환담하는 장면, 환영 연회 장면, 특급 의전을 받으며 베이징 시내를 지나가는 장면들로 구성됐다. 이보다 앞서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던 지난해 9월 말에는 평양과 백두산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한 사진으로 게시판을 장식하기도 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올해 들어 사회주의권 국가와 교류하는 사진이 연속으로 실리면서 합의문 없이 노딜로 끝난 북·미 회담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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