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황금폰’과 유인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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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호 31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빅뱅 멤버 승리의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드러난 정준영의 ‘단톡방’ 대화와 불법 촬영 동영상 공유를 보면, 이들이 여성을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같은 인간이 아닌 물건이다. 문제는 이런 특정 연예인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유명 대학에서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여학생들을 물건처럼 품평하고 성희롱하고 불법 촬영물을 공유한 사례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정준영의 친구들은 그의 휴대전화를 ‘황금폰’이라고 불렀는데, ‘황금폰’이라는 말은 여성을 일종의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체 왜 그런 동영상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할까.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이것은 변태성욕보다도 ‘전리품 의식’ 때문이다. 그들의 사고에 ‘여성은 물건’이기에 ‘전리품 획득 기념’으로 동영상을 올려 ‘능력’을 과시하고 남자들 사이에 인정받고 연대를 다진다는 것이다. 원시 가부장 사회에서 실제 여자를 약탈·강간하고 자원으로서 교환하며 서로 간의 연대를 공고히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성적 문란함’의 문제가 아니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기로는, 인간과 유전자가 98% 이상 일치하는 보노보를 따를 영장류가 없다. 하지만 프란스 드 발 같은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보노보의 성행위는 상호존중적이며, 갈등과 긴장이 있을 때 그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성관계를 한다. 보노보와 함께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침팬지 사회에서는 가부장 권력을 위한 수컷들의 유혈 싸움, 암컷에 대한 강간과 폭력, 패배한 수컷이나 그 새끼들의 살해가 비일비재하다. 암컷은 승리한 수컷의 전리품으로 간주된다.

반면에 보노보 사회는 비교적 수평적이고 평화로우며 약자가 보호받는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보노보 사회는 가모장이 이끄는, 그러나 암컷 우위라기보다 성평등에 가까운 사회로서, 암컷들이 연대해서 폭력을 저지하고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주체가 되고 권력이 있는가와 강간·약탈·폭력이 성행하는지는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다.

클럽 버닝썬 사건, 정준영 단톡방 사건, 장자연씨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 지난해 대규모 여성시위를 불러온 ‘몰카’ 공포는 상관없는 별개의 사건들이 아니다. 여성이 은연중 물건과 객체로 간주되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정한 성평등 사회가 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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