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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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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벌써 다섯 번째다. 어젯밤 도착한 셰어링카에 개인 프로파일을 옮기려는데 계속 에러가 난다. 인공지능(AI) 상담원은 클라우드에 있는 프로파일을 복원하라는 말만 반복한다. 당장 아들 집에 들러 손자를 태우고 현장학습에 데려가야 하는데, 시동조차 걸 수 없다.

다른 차를 배차하려 해도 가능한 차량이 없단다. 상담원이 사람이라면 읍소라도 해보겠는데 AI 상담원은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옛날 같으면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가련만, 구식 수동 운전면허는 휴짓조각이나 다름없다. 사고 발생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인간의 운전이 금지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수동운전 차량은 전용 트랙에서만 ‘취미로’ 운전할 수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스마트폰에 전화번호부를 옮기는 것조차 어려워하셨는데 도와드리는 게 왜 그리 귀찮았는지. 그냥 피처폰이나 쓰시라고 면박을 드렸던 게 후회된다. 아들놈에게 말해봐야 나도 면박이나 당하겠지. 자동차가 옛날 스마트폰처럼 바뀔 줄은 몰랐다. 지난달 모빌리티용 개인 프로파일이 해킹당했을 때도 “왜 보안 프로토콜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잔소리만 들었다.

위에 적은 상상은 사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생전에 경험할 일이 없는 얘기다. 하지만 언젠가 현실이 될 일이기도 하다. 자동차 업계는 이미 소유가 아닌 공유, 수동운전이 아닌 자율주행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차량을 구입해 사용하다가 폐차하거나 중고로 파는 게 아니라, 차를 빌려 개인 프로파일을 설정해 사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스마트폰을 바꿔도 전화번호부와 카카오톡 대화, 게임 세이브 파일을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것처럼.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디바이드(AI Divide)가 올 거라고 말한다. 이달 출시되는 현대자동차의 신형 쏘나타는 스마트폰과 연동한 개인화 프로파일을 통해 시트와 아웃사이드 미러의 위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공조장치 등의 설정을 유지할 수 있다. 차를 바꿀 때 개인 설정을 그대로 옮길 수 있어 편리하지만, 이 기능을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더 불편해질 수 있다. 최신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정보 격차가 생긴다.

보안문제도 커진다. 차를 해킹해 고의로 사고를 내는 일도 SF영화 속 일만은 아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기술이 인간에 위해를 가하는 역설을 막으려면, 치밀한 보안기능 개발이 뒤따라야 한다. 세대 간 AI 디바이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손쉬운 사용자 경험 개발도 필수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