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환경부 임원 채용 때 ‘청와대 낙점’ 표시돼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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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채용에서 특혜를 받고 합격한 다수의 현직 임원들이 공모 전 청와대가 내정한 지원자라는 사실이 담긴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청와대 개입 정황 문건 확보 #이르면 내주 인사수석실 소환

해당 문건에는 지원자의 이름 등에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임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특정 표식 등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도 산하기관 임원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추천 인사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해당 문건들이 환경부 산하기관 채용비리 의혹에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핵심 증거일 수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이르면 다음주 청와대 인사수석실 관계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환경부 산하기관에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대선 캠프 출신 또는 더불어민주당 관련 인사 13명이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검찰은 이들 중 상당수가 청와대가 추천했거나 내정한 지원자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 사실을 사전에 파악한 환경부와 산하기관 관계자들이 이들에게 면접 질문과 모범 답안을 미리 전달하고 서류심사에서 다른 지원자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준 정황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공원공단 권경업 이사장의 경우 서류 심사에서 9등을 했지만 5명을 추린 면접 대상에 올랐고, 결국 최종 후보로 제청돼 2017년 11월 임명됐다. 권 이사장은 문화계의 대표적인 ‘친문(親文) 인사’로 꼽힌다.

환경부측, 모범 답안 미리 전달 … 서류심사서 높은 점수 준 의혹

국립공원공단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이사장 심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권 이사장은 면접 심사에서 5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한 위원으로부터 100점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 초기 전(前) 정부에서 임명된 임원들을 임기 전 표적감사로 몰아냈던 환경공단 수사에 집중했다. 수사 과정에서 표적감사 내용이 담긴 문건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보고된 정황을 파악해 김 전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출국 금지했다.

검찰은 이어 표적감사 후 진행된 환경공단 임원 공모 과정에서 청와대가 추천한 인사에게 특혜가 제공된 의혹을 포착했다. 환경공단은 지난해 7월 이사장과 상임감사에 대한 1차 공모를 진행했다. 이때 청와대가 추천한 인사가 채용 관련 정보를 미리 전달받았음에도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자 면접 합격자를 전원 탈락시킨 뒤 재공모를 실시했다.

이후 이사장에는 노무현 정부 비서관 출신의 장준영씨가, 상임감사에는 문재인 대선캠프 환경특보 출신의 유성찬씨가 임명됐다. 유씨의 경우 2차 공모 전 환경공단 관련 자료를 미리 전달받은 특혜 의혹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최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후 다른 환경부 산하기관에서도 비슷한 ‘채용 비리’ 패턴을 확인해 환경부 산하기관 전체로 수사 범위를 넓혀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달부터 환경부 산하기관 전·현직 임원에 대한 참고인 소환을 진행했고 최근 관련 조사를 마무리한 상태다.

청와대는 검찰의 수사에 대해 “청와대와 환경부가 산하기관 임원 인사를 협의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청와대와 환경부가 산하기관 인사 협의를 하는 ‘시점’을 위법성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대다수의 산하기관에서 공모 절차 전 특정 후보를 내정하고 특혜를 제공했다면 인사 협의가 아닌 조직적인 채용 비리라는 것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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