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들의 잇따른 불출석으로 제자리걸음이었던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이 다시 본격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법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증인으로 채택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강제 구인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부인과 사위를 증인으로 불러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이날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서 “이 전 회장이 제시한 불출석 사유만으로는 형사소송법이 정하는 불응사유로 볼 수 없다”며 구인을 위한 구속영장을 발부한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다음달 5일 오후2시5분으로 지정됐다.
"이팔성, 건강 안좋아도 증인신문 응해야"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법원은 증인의 연령ㆍ직업ㆍ건강상태ㆍ기타의 사정을 고려해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의견을 묻고 법정 외에 소환하거나 소재지에서 신문할 수 있다”며 “증인이 증언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면 재판부는 법정 밖이나 주거지에서 증인을 신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인 앞에서 진술하기에 불안감이 든다’는 이 전 회장의 입장에 대해서도 형사소송법상 “비디오 등 중계 장치나 피고인을 만나지 않는 방법으로 증인 신문을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재판부는 차폐 시설을 설치하는 방법 등도 있다며 “증인이 일반인에게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출석한 후 증언을 마친 후 돌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 전 회장이 직접 쓴 비망록은 1심에서 이 전 대통령이 징역 15년을 선고받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 비망록에는 이 전 회장이 인사청탁을 위해 이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제공한 정황과 심경 등이 담겨 있다. 항소심이 시작되자 이 전 대통령 측은 비망록 내용이 허위라며 이 전 회장을 증인으로 법정에 불러줄 것으로 요청했지만 ‘폐문부재(문이 잠겨있고 사람이 없음)’로 증인 소환장이 전달되지 않아 실패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등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이들에 대해서도 증인 신문을 요청했지만 같은 이유로 이뤄지지 않았고, 재판은 공전 상태에 들어갔다.
지지자에 손 흔든 MB…검찰은 '김윤옥 증인 신청'으로 맞불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 사위 이상주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은 “김 여사는 이 전 회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아 양복대금을 대납하겠다는 말을 들은 당사자이고 이 변호사는 이 전 회장이 피고인에게 제공한 거액의 자금수수에 지속적으로 관여했다”며 이들에 대한 증인신문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증언 거부권을 갖고 있는 친족 두 명만 증인으로 신청한 이유에 대해 상당한 의아심과 유감이 든다”며 반발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의 증인신문을 마친 후 이들의 증인 채택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날 공판은 이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석방된 후 처음으로 열린 재판이었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이 전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 ‘이명박’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40석의 소법정은 지지자와 취재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법정 바깥까지 그를 보러 온 대기자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재판부는 14일 이 전 대통령이 보석 조건을 준수하고 있는지 검찰과 변호인, 경찰 관계자 등을 불러 점검 회의를 연다. 15일에는 원세훈 전 국장원장 등에 대한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다. 재판부는 “각 증인마다 구인을 위한 구속영장 발부 조건이 갖춰졌는지 검찰 측의 의견을 수렴해 구인장 발부 여부를 결정 하겠다”고 밝혔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