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쥐는 수입은 줄어드는 와중에 세금ㆍ이자 부담은 계속 늘어난다. 언제 퇴사할지 모르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지만, 이미 자영업은 은퇴자의 ‘무덤’이라 창업도 마땅찮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있는 연령층인 50대, 이 가운데서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50대 가구주가 마주한 현실이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50대가 가구주인 가계의 명목 월평균 가처분소득(전국ㆍ2인 이상)은 412만원으로 1년 전보다 2.4%(10만2000원)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2분기(-2.9%)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지난해 4분기 전체 가구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2.1%로 2015년 2분기(3.1%) 이후 증가 폭이 가장 컸는데, 유독 50대 가구만 내리막으로 치달은 셈이다. 가처분소득은 명목소득에서 조세ㆍ연금ㆍ이자 비용 등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것으로 소비나 저축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이다. 가처분소득이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가계의 실질적인 경제 여력이 줄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우선 최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이어진 고용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50대 가구주 가계의 ‘근로소득’은 1년 전보다 0.1% 줄면서, 증가율은 2013년 4분기(-0.7%) 이후 5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근로소득이 주춤하면서 전체 소득 증가 폭은 2017년 2분기(0.5%) 이후 가장 작은 1.3%에 그쳤다. 통계청 관계자는 “50대 가구주 가계 구성원의 취업인원수 감소율이 60세 이상 가구주 가계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고 말했다.
비소비지출이 증가한 여파도 컸다. 50대 가구주 가계의 비소비지출은 125만8000원으로 1년 전보다 15.5%(16만8000원) 늘었다. 월평균 전체 소득(537만8000원)의 4분의 1 정도(23.4%)를 세금이나 국민연금 같은 공적 연금ㆍ보험, 대출이자에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소비지출은 가계가 줄이려고 해도 자율적으로 조율할 수 없는 분야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2017년 4분기에는 비소비지출 비중이 20.5%였는데 1년 새 2.9%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자 비용은 평균 4만1000원(48.2%) 증가했다. 최근 수년간 가계부채가 급격히 팽창한 상황에서 지난해 금리까지 오르면서 50대 가구주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 50대 가구주 가계의 평균 금융부채는 9104만원으로 40대(9979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금융대출 중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 비중은 50대(15.4%)가 40대(13.9%)보다 더 높았다.
경상조세는 평균 7만2000원(42.2%) 늘었다. 세금 증가와 공적 보험료 인상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전체 가구의 평균 이자ㆍ경상조세 증가율은 24.1%, 29.4%에 불과해, 50대 가구주 가계와 큰 격차를 나타냈다.
50대 인구는 지난해 기준 838만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있는 연령층이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6%나 된다.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도 일부 포함돼있다. 이런 점에서 은퇴를 앞둔 50대 가구주 가계의 경제력 악화는 저출산 고령화와 맞물려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비ㆍ저축을 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줄면 그만큼 50대 가구주의 노후 준비는 부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은퇴 시기는 앞당겨지고 퇴직 후 다른 일자리 얻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소득은 불안정한데 각종 부담만 늘어나는 셈이다.
일단 과거처럼 은퇴 후 치킨ㆍ커피전문점 창업 등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위험이 크다. 은퇴자들이 쉽게 진입하는 숙박ㆍ음식점, 도ㆍ소매의 3년 생존율은 각각 30.2%, 35.5%로 자영업 평균(39.1%)을 한참 밑돈다. 특히 최근 들어 매출은 줄어드는데 인건비와 임대료 등은 오르면서 자영업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은퇴한 50대 중 일부는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일용직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50대 이상 아르바이트 구직자가 2016년 대비해서 4.8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알바 구직자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도 1.6%에서 2.8%로 증가했다.
정부도 50대의 소득ㆍ고용상황이 위기라는 진단 아래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신중년 경력활용 지역서비스 일자리사업, 신중년 직업훈련교사 양성과정 등을 신설하고, 고용장려금 지원 대상과 액수도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한국노동경제학회장을 역임한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금 인상이나 공공일자리처럼 사회복지 성격이 강한 재정지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은퇴자가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직업전환ㆍ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ㆍ김도년 기자 sohn.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