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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볼모' 한유총 전술···이번엔 안 통하는 두가지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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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유치원 버스들이 떼 지어 저속주행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유치원 버스들이 떼 지어 저속주행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유총의 ‘벼랑 끝 전술’이 이번엔 안 통할 겁니다.”

1일 오후 익명을 요청한 교육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무기한 개학 연기’ 방침을 발표하고 정부가 강경대응을 예고한 뒤 하루만이다. 그는 “한유총이 아이들을 볼모로 압박 카드를 제시했지만 실제 개학 연기되는 유치원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이 볼모’ 한유총 이번에도 통할까, 가장 큰 변수는 한사협

지금까지 한유총은 이해관계가 얽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집단폐원’, ‘동맹휴업’ 등의 극단적인 전략을 내세워 정부를 압박했다. 실제로 2016년과 2017년 한유총은 정부의 재정지원 증액, 국공립 유치원 확대 정책 폐기 등을 내세우며 ‘집단휴업’을 예고했다. 그럴 때마다 교육부는 한유총에 끌려가며 휴업을 막기에 급급했다. 유치원이 문 닫을 경우 비난의 화살이 정부로 돌아올 것을 염려해서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10월 사립유치원 비리가 터지자 교육부는 곧바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거듭된 한유총의 대화 요청에도 선결 조건 수용 없이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현재까지도 유 부총리는 “정부가 제시한 공공성 강화 대책을 수용하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왼쪽)와 같은날 유치원 공공성 강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연합뉴스, 뉴스1]

지난 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왼쪽)와 같은날 유치원 공공성 강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연합뉴스, 뉴스1]

유 부총리는 이날 오후 열린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 회의에서도 한유총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는 “학부모와 학생을 볼모로 무기한으로 입학식을 연기하는 것은 국민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자 불법”이라며 “교육자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대로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학 연기 유치원에 대해선 신속하고 강력한 시정명령과 행정처분을 실시하고 우선적으로 감사에 돌입하겠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한유총의 ‘무기한 개학 연기’ 카드는 스스로 예상했던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전날 한유총은 “회원사 3100여 곳 중 60% 정도가 참여할 것”이라고 공표했지만 실제 교육부의 조사 결과는 한참 못 미친다. 유 부총리는 “한유총의 주장과 달리 개학을 연기한 곳은 164곳뿐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 중에서도 97곳은 자체 돌봄을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유총은 “교육부의 데이터는 믿을 수 없다, 경기도의 한 지회만 해도 70여곳이 참여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실제 한유총의 주장대로 개학 연기에 동참하는 사립유치원은 교육부 조사처럼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한유총의 압박 카드가 먹히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사립유치원의 비리 문제가 이슈화 된 후 한유총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않다. 정부와 국회 모두 한유총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야당 또한 한유총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 국회 교육위 소속의 야당 관계자는 “한유총의 대응 방식이 과격하다 보니 충분히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한 문제도 갈등이 되는 경우가 있어 부담”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교육 이슈에 입장을 밝힌 것도 한유총으로서는 부담이다. 검찰청 공안부(부장 오인서)는 1일 “한유총에서 발표한 소속 유치원의 무기한 개학 연기는 교육관계법령에 위반될 소지가 크므로 향후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립유치원의 개학 연기는 학교운영위원회 자문을 거쳐야 하는데 이 절차를 위반하면 유아교육법 위반으로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지난 달 26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왼쪽 두번째)과 박영란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 공동대표(오른쪽)가 만나 에듀파인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달 26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왼쪽 두번째)과 박영란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 공동대표(오른쪽)가 만나 에듀파인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두 번째는 한유총과 노선을 달리하는 또 다른 사립유치원 단체의 존재다. 지난해 12월 한유총에서 분리된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한사협)의 회원 수는 한유총의 4분의 1가량(700여명)밖에 안 되지만 서울 지역 유치원장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한사협의 한 관계자는 “오랫동안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교육자적 마인드가 강한 분들이 한사협의 중심”이라며 “조만간 한유총을 이탈해 넘어오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사협은 한유총의 ‘무기한 개학 연기’ 방침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임병하 한사협 대변인은 “(개학 연기는) 교육자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한사협은 오직 유아들을 위한 교육에만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교육부와 교육청은 한사협을 진지한 협상 파트너로 여긴다. 실제로 한사협이 제안한 ‘공적 적립금’ 제도는 교육부에서도 실행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임병하 대변인은 “시설 사용료를 받아서 이윤의 형태로 개인이 가져가는 게 아니라 건물 보수, 통학버스 구입과 같은 교육적 목적으로 적립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권지영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장은 “유치원을 운영하다 보면 건물이 노후해져 개·보수에 비용이 들게 된다”며 “이를 위해 미리 적립금을 쌓아놓자는 취지는 합리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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