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진핑 만난 뒤 협상 실패 대응책 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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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도출에 실패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복잡한 속내가 1일 표출됐다. 전날 북·미 정상회담이 돌연 중도에 끝난 후 베트남 외교부는 김 위원장의 공식방문 일정과 관련해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1일 오전 김 위원장의 일정이  조정된 게 알려졌다. 당초 2일 오후였던 귀국 시간이 2일 오전으로 반나절 앞당겨졌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조기귀국을 결정한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26일 새벽 중국 남부 난닝의 역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 [TBS 제공=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26일 새벽 중국 남부 난닝의 역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 [TBS 제공=연합뉴스]

정부 당국자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다 이후 북·미 양측이 진실 공방을 펼치면서 복잡한 상황이 되고 있다”며 “베트남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복잡한 상황을 신속하게 복기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평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앞당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올인’ 모드로 준비했던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발생한 충격파를 고려하면 곧바로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초청국인 베트남의 입장을 고려해 출발 날짜는 지키되 시간을 조정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베트남 방문에 이수용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이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 등 외교안보 핵심 참모를 대동했다. 이에 따라 숙소인 멜리아 호텔이 외교안보 컨트롤 타워가 됐다. 그럼에도 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호텔방 대책 회의’에는 한계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당·군의 참모진이 모두 포진한 ‘평양 회의’ 갈증을 느낀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반나절 일정 조정을 놓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긴급 협의가 예정됐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도 현지에서 나온다. 하노이에 머물고 있는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중국은 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북한을 지지한다는 입장”이라며 “지난 1월 베이징 북·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해 양국이 긴밀히 논의하기로 한 만큼 가까운 시일 내 북·중 정상이 직간접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새벽 심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은 모든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미국 측 주장에 대해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며 반발했다. 영변 핵 시설 폐기와 대북 제재 일부 해제라는 자신들의 제안을 바꾸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회담 결렬을 선언하지 않고, 미국에 대한 비난도 자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신중한 모드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 부원장은 “시 주석을 만나는 것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중국과의 협의가 끝나면 북한의 대응책이 나올 것 같다”고 전망했다.

 북한의 대응책으로는 중국이나 한국의 중재를 통한 재협상 방안이 거론된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 기간중 “우리(북한)는 시간이 없는데….”라고 했던 점을 고려하면 북한은 빠른 협상을 원하는 분위기로 볼 수 있어서다. 일단 중재자를 찾을 것이란 얘기다. 그런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중 밀착을 통해 ‘새로운 길’, 즉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하지 않아도 중국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김 위원장이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다. 단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이 어디까지 나설지가 관건이다.

 물론 미국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북한 특유의 어깃장 전술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지지 기반 약화를 역이용해 시간 끌기로 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침묵의 방식으로 미국에 공을 넘겨 생각을 바꿔 보겠다는 취지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베트남 띄우기를 이어가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 ‘재생산업 발전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윁남(베트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베트남이 폐기물 재활용 산업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김정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출발(23일)했다는 보도를 한 뒤, 회담이 시작된 지난달 27일부터 사흘 연속으로 ‘시리즈’성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베트남 알리기에 나섰다.

하노이=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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