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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나쁜 딜 착각, 트럼프는 빅 딜로 오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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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바라보는 워싱턴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랭했다. 중앙일보는 회담 결과가 나온 직후 워싱턴의 여론 형성에 큰 영향력을 지닌 북·미 관계 전문가 8명에게 긴급 설문을 실시했다. 대체로 두 가지 큰 반응으로 나뉘었다. “예견된 결렬이었다”는 것과 “결렬돼서 차라리 잘됐다”란 응답이었다.

워싱턴 외교 전문가 8인의 평가 #나쁜 딜보다는 노딜이 낫다 #빈손인 트럼프·김정은 모두 패자 #최대 승자는 희생 안 된 대북제재 #최대 패배자는 문재인 대통령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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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렬의 원인은=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안보석좌는 “트럼프는 김정은이 ‘대담한 딜’을 할 의향이 있다고 오해했고, 김정은은 트럼프를 ‘나쁜 딜’을 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오해했다. 둘 다 틀렸다”고 분석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왜 정상회담 전에 진짜 실무협상들이 잘 이뤄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준비 미숙’을 지적했다. 제니 타운 38노스 편집장은 “양측 모두 상대가 받아들일 뜻이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다시 만날 약속과 같은 상징적인 것조차 하나도 성사되지 않은 게 놀랍다”(찰스 암스트롱 컬럼비아대 한국학연구소 소장)는 반응이 나왔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기상조인 ‘평화선언’, 그리고 화려하지만 나쁘게 짜인 ‘딜(협상)’을 하는 걸 잘 참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빅터 차 석좌도 “나쁜 딜보다는 노 딜(No deal)이 낫다”고 했다.

◆향후 전망은 비관적=빅터 차 석좌는 “3차 정상회담은 한동안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관측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이런 당황스러운 회담 후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에 나서고, 또 양보할 마음이 더 생기고 덜 생기고 할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폴락 연구원은 “협상을 일시 정지하고 대북 접근 방식을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당장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고조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클링너 연구원은 “김 위원장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대규모 연합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단기간 내에 군사적 긴장이 재개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김정은 모두 패자”, 한국은?=찰스 암스트롱 소장은 “빈손으로 돌아오는 트럼프나 자국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제재 완화를 노렸으나 실패한 김정은 모두 패자”라고 했다. 크로닌 안보석좌는 “두 정상 모두 뭔가를 잃었지만 미국과 그 동맹들은 승리했다”고 진단했다. 정 박 석좌는 “트럼프와의 담판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 김정은도, 북한과의 외교의 문이 닫힌 점에서 트럼프도 패자”라며 “하지만 ‘비핵화 없인 제재 완화 없다’는 의지를 굳건히 보여준 점에서 그나마 트럼프 쪽이 낫다고 본다”고 평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가장 큰 승자는 ‘나쁜 합의’를 희생하지 않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과 미국 법”이라며 “트럼프에게 퇴짜를 맞은 김정은이 최대 패자”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대륙간탄도미사일 협상만 챙기고 중·단거리 미사일을 허용하는 협상을 하지 않아 일본이 안심하게 됐다”(칼라 프리먼 존스홉킨스대 외교정책연구소 이사)는 분석도 있었다. 한편 “정상회담 성공으로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재개할 기회를 노리던 한국이 가장 크게 실망할 결과였다”(타운 편집장), “하노이 회담의 가장 큰 패자는 거기에 없던 문재인 대통령”(폴락 연구원)이란 평가도 나왔다.

◆회담 성적표는=대상자들에게 0~10점 중 이번 하노이 회담에 몇 점을 주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1차 회담 직후 던졌던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당시 점수를 매기지 않은 두 명을 제외한 6명의 평균점수는 10점 만점 중 5.5점이었다. 이번에는 무응답자 한 명을 제외한 7명의 평균점수가 3.3점으로 급락했다. 크로닌 석좌는 1점을 주면서 “다만 단기적 손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고 했다. 조너선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양측의 오산과 불충분한 준비가 빚은 실망스러운 회담”이라며 마찬가지로 1점을 줬다. 프리먼 이사는 “완벽하게 실망시켰으며 향후 모멘텀에 대한 계획도 남기지 못하면서 ‘새로운 위험’을 제공했다”며 4점을 줬다. 하지만 클링너 연구원은 “영변과 평화선언을 맞바꿀 것이라는 보도를 보고 매우 낮은 평점을 주려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8점을 준다”고 했다.

하노이=김현기 특파원, 이영희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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