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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각성 투철히…낙관은 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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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책임과 무규율의 낭비와 행패를 그 나마 버텨주던 것이 경제 였는데 이제는 그 경제가 별수 없이 위기의 경고를 보내고 있다.
지난 1년반 동안 임금은 62.5%나 상승해 고소득 국가인 대만·홍콩보다도 높아졌다. 국제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제조업 가동률이 73%밖에 되지 않는다.
선비풍모의 조정 부총리는 다시 국민들에게 절제 외에는 경제를 살릴 방법이 없노라고 호소하고 나섰으나 과연 사회각계가 이를 절박하게 받아들였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어리석은 투쟁의 행군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대우조선은 1조3천억원의 채무를 안고 쓰러질 것이다. 1만3천명 근로자들은 정치투쟁으로 가투를 벌일 것이고, 형편이 더 나쁜 하청업체 3만명 이상 근로자들은 파업도 해보지 않은 채 실직의 위험에 직면하며 결국 옥포는 황량해질 것이다.

<믿던 경제마저 먹구름>
대우조선이 도산하면 은행들도 심각한 부실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은행원 노조는 이미 점거농성 투쟁을 통해 20%이상의 임금인상을 달성해 둔 바 있다.
광원 4천명인 국내최대의 사북광업소가 1개월째 철도점거 등 과격투쟁에 흔들려 왔다. 정부 보조금으로 채산을 맞추는 실정임에도 15.5%라는 낮지 않은 임금인상안에 노사가 합의했으나 투쟁 일변도의 강경파가 노조집행부를 어용으로 몰아내면서 과격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미 권위가 도처에서 무시당하고 규율은 해이하며 냉소와 부정의 기분이 넘실거리니 만큼 정부의 호소는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우리 경제는 시들어갈 것이다. 실업자가 늘어나며 불평·불만은 더 높아질 것이다. 정치인들은 흔히 사람들을 혼미 속으로 몰아갈 것이며, 지식인들의 눈치와 영합도 계속될 것이다.
난제들이 피상적으로 몰려오고 있으니 미처 정신차리기도 어렵다. 급한 불을 끄고 보는 것이지 근까지 제거 할 엄두도 못 낸다. 그러다 보니 상황이 역전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운동권 학생은 화염병과 돌을 우박처럼 던지고 있는데, 경찰은 방패만 들고 서서 말이 「인내작전」이지 숱한 부상자를 내면서 총알받이 구실을 하고있다.
공권력을 동네북처럼 두드리곤 하는 바람에 이 모양이 되었다. 그래 놓고는 또「강력한 정부」를 노래하니 말의 앞뒤도 맞지 않는다.
불신과 분열이 너무 심하므로 외기가 오는 것을 알고도 대비책은 세우지 못한 채 눈뜨고도 수령으로 빠져들게 생겼다. 설득도, 호소도 통하지 않고 강제력도 마땅치 않다면 불가불 위기를 된통 겪어야 함 것은 뻔한 일이다.

<남미·베트남 화 걱정>
그러므로 아예 위기를 겪어 견디어 내기로 각오하고 나서자. 아예 어설픈 낙관론, 과도기적 진통론은 버리자. 그런 분석은 역사적 통찰력도, 절실한 현장의식도 없었다.
2, 3년 사이에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 남미처럼 가망 없는 나라로 시들어버릴지도 모르고, 얼치기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베트남 식으로 북한의 김일성 집단을 불러들이게 될 것도 같다. 나라를 구하려면 먼저 나라 걱정부터 많이 해야한다. 그러면 마음도 간결해지고 일의 열심도 나올 것이다.
역사는 지금 위기로써 우리에게 도전해 오고있다 만일 책임감을 느껴 이에 응하고자할 때 무엇보다 먼저 요구되는 것은 철저한 각성이다. 인격적이요, 역사적인 각성이다. 위기의 원인은 자기에게서 찾으며 자기부터 고쳐가겠다는 깨달음이다. 이러한 각성은 위기의 심각함을 느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각성을 했다면 남을 비난하거나 남에게 요구하기보다 먼저 본을 보일 것이다. 특히 정부인사와 정치인, 기업인 등 사회각계 지도층들은 언론과 서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있다.
서민들의 자제를 요청하기에 앞서 준법과 근검과 절약의 남다른 모범을 보여야 한다. 권위의식은 물론이요, 청사나 집무실이 공연히 넓거나 요란스러운 것도 모두 절제의 호소에 어울리지 않기 쉽다.
다음으로 구호와 명분에서 벗어나 사실과 역사 위에 서야한다. 바로 실사구하의 자세요, 도산 선생이 말한 무실역행의 정신이다. 대개 구호는 감정적 단순화에 불과하므로 이를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민주는 질서 속의 조화>
예컨대 「민주화」의 구호에 집착하노라면 권위의 부정과 규율의 무시로 빠지기 쉽다. 그러나 민주화는 오히려 질서 속의 조화요, 법의 지배인 것이다.「5공청산」의 구호가 정치적 보복의 금지와 충돌치 않는 바른 명제라면 어떤 사람의 제거가 아니라 억압과 비리 형태의 재발방지에 뜻이 두어져야 하는 것이다.
명분이 흔히 속셈과는 다른 어떤 내세워진 허울의 뜻으로도 쓰여왔고 아예 개념이 다른 때도 있다. 사회주의 개념의「민족」은 체제를 전제로 하며「민주」라 해도 군중대회 방식을 의미하는 셈이다.
요즈음 거론되는 「교직원노조」는 그 결성 선언문상 교사의 권익단체가 아니라 변혁투쟁을 위한 정치활동단체임이 분명하다. 따라서「참교육」을 표방하나 실은 현 체제 부정의 변혁 이념교육을 숨기는 방편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사실 모든 종류의 이념 논쟁에 있어 사실과 역사만큼 반론의 확실한 근거도 없을 것이다. 오늘의 역사적 사실들은 사회주의 실험이 이미 종언을 고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동시에 소련이나 북한에 있어 파탄의 반작용을 예상할 수 있으며, 한편 우리 나라와 미국 모두 지금 큰 역사적 전환을 겪고있는데 이 모든 일이 앞으로 2, 3년내에 어떤 모습을 이루게 되리라는 점이다. 이렇게 사실과 경험을 증시 함으로써 오류를 최소화 할 수 있다.. 구호와 명분에서 벗어남으로써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술수에 넘어가지 않게 된다.
끝으로 이익을 대변하거나 추구하기보다 궁극의 가치를 위해 산다는 신념이 매우 소중하다. 그때야 비로소 시류의 동향이나 대중의 인기도를 살피지 않고 정직한 자세로 의 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가 아니고서는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친 소나기가 닥치자 서울 하늘에서 스모그가 일시 사라졌다. 우리를 암울하게 덮어 누르던 분진과 매연이 사라지니 하늘이 그 본래의 창색, 곧 맑고 부드러우며 환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위기일수록 본래의 모습을 찾자. 살길을 찾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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