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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부위수사"비난에 한기해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관계기관간의 대공수사역량을 총집결, 확산일로에 있는 좌경폭력세력을 척결하겠다며 발족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발족 77일만인 19일 해체됐다.
그러나 설치 목적대로 좌경폭력세력의 완전한 척결로 합수부가 해체됐다고는 검찰에서 조차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형편이다.
이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김기춘검찰총장은 합수부해체를 발표하면서 「해체」라는 말대신「발전적 개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즉 기존의 합동수사반을 활용, 사안별·사범별로 각기관간 공조체제를 공고히해 이들 세력에 적극 대처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문제의 세력이 근절될때까지 상설기구로 운영하겠다던 합수부를 뚜렷한 명분없이 실질적으로는 타의에 의해 해체케 된 근본적 이유는 정치권 타협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17일 여야중진회담에서 합수부해체를 정부측에 건의키로 합의했고 이어 정부·여당이 이를 수용키로 방침을 결정함에 따라 해체는 시간문제였다.
합수부를 사실상 주도해온 검찰은 정부·여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면서 기존의 「활동내용」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속셈에서 예상보다 다소 앞당겨 해체를 단행했다고 볼 수 있다.
합수부가 문목사방북사건은 물론이고 노사분규, 재야의 사회·문화·학생단체, 의식화교사, 각종 지하 출판유인물 등 청탁의 뚜렷한 구분없는 무소부위의 수사로 야당과 재야 운동권의 표적이 됐던 것도 단명을 재촉한 셈이다.
그동안 「합수부 해체」가 야당과 재야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게 됐고 법적인 설치근거나 명분에서도 셜득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여당으로서도 더이상 실익이 없는 합수부 존속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합수부는 이건개 대검 공안부장을 본부장으로 공안검사·문교부·문공부·노동부·경찰과 안기부·보안사관계자로 구성돼 정부 관계부처간의 시국·공안관련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분석·수사하겠다는게 설치 목적이었다.
그동안 구속 3백17명, 불구속입건 1백26명등 모두 4백43명이 합수부에 의해 사법처리됐으나 이들의 좌경폭력세력여부는 사법부의 판단에 맡길수 밖에 없는 실정.
사건별로는 구속이▲문목사사건 8명▲인노회등 이적단체관련 21명▲노사분규 60명▲노학연계주동자 25명▲학원폭력시위 1백5명▲좌경의식화교사 학습사건 3명▲평양축전관련 5명▲좌경이념 출판물 8명▲기타노사분규·학원사태관련 72명.
문목사를 비롯, 이부영·이창복 전민련공동의장과 이재오전민련조국통일위원장·시인 고은씨·이영희교수·조계우평화연구소장등이 이에 포함되어 있으며 부산동의대사태나 전교조등은 합수부에서 처리하지 않았다.
합수부 발족이후 시국·공안사건 수사가 무법·탈법의 5공식에서 일부 탈피, 합리적으로 진행됐다는게 하나의 소득으로 꼽히고 있다.
즉 전민련 등 간부들을 수사하면서 단체를 마구잡이로 파헤치지 않고, 개인별 범법사실만 수사했으며 구속기간 준수·사전구속영장·압수수색영장·구인장의 활용, 안기부내의 피의자 면회·고문시비근절등이 새로운 발전이며 특히 검찰이 안기부 구속자에 대한 감찰을 강화한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정기관의 핵을 차지하는 검찰이 독자적인 기획·수사 영역을 확보하지못하고 관계기관과 합동으로「옥상옥」을 설치했다가 야당·재야등의 외풍과 정치적 타협으로 이를 해체하는 등 파행을 거듭한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게 법조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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