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환경부, 기관 채용비리 조사 뒤 찍어내기 의혹 문건 작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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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환경부가 2017년 산하기관 8곳의 채용실태 특별점검을 진행한 뒤 전(前)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표 제출 현황 등을 담은 일명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하기관엔 “외압 채용 말라”며 #임원엔 정권 친분 인사 앉힌 의혹 #환경부 인사 방식, 과거 정부 답습 #재공모 → 낙하산 편법도 드러나

21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환경부 산하기관 채용실태 특별점검 실시 계획안’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2017년 10월 23일부터 11월 24일까지 5주 동안 환경부 산하 8개 기관의 최근 5년간 정규직 채용 실태에 대해 점검키로 했다. 환경부는 당시 ‘공공기관 채용 비리는 반사회적 범죄로 청산되어야 할 적폐’라고 명시했다. 감사를 위해 감사담당관을 반장으로 3인 1조의 총 2개 팀을 꾸렸으며, 운영지원과 소속 2명을 협조 인력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환경부가 지난 2017년 10월 19일 작성한 '환경부 산하기관 채용실태 특별점검 실시계획' 서류.

환경부가 지난 2017년 10월 19일 작성한 '환경부 산하기관 채용실태 특별점검 실시계획' 서류.

실제 환경부는 이 감사계획수립안에 따라 특별점검을 시행해 지난해 1~2월 각 산하기관에 조치계획 및 처분요구를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환경부 산하 8개 공공기관 임원 사퇴 등 관련 동향'(일명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이 작성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은 지난해 1월 초 작성돼 그해 1월 17일 감사관에게 보고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은 이에 대해 “환경부가 아래로는 정규직 채용의 불법ㆍ편법 등 비위행태를 조사하면서, 위로는 정권 입맛에 맞는 기관장 및 임원 임명을 위해 전 정권 때 임명된 인사들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하고 비상식적인 채용 프로세스를 통해 임명하려던 정황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특정인을 정해 놓고 표적 감사를 벌여 사표를 받은 후 낙하산 인사로 그 자리를 채우는 데 국가권력을 동원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는 전 정부 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보다 죄질이 더 무겁다"고 비판했다.

실제 당시 환경부는 특별점검 중점 감사내용으로 ‘청탁ㆍ외압으로부터의 중립성 및 독립성 확보 여부’를 강조하기도 했다. 또 '채용프로세스의 운영실태 및 취약요인 점검으로 비위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고 있는 문건에 오른 산하 공공기관 기관장 및 임원은 대부분 ‘공모’를 통해 투명하게 선발ㆍ임명돼야 한다. 환경부 스스로 고위직 채용 프로세스에 어긋나는 의혹 문건을 작성해놓고, 채용실태 감사에서는 청탁 및 외압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적용ㆍ강조한 셈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해당 문건과 관련된 세부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는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고 밝혔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김태우 전 수사관이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등의 의혹을 폭로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자유한국당이 김 전 수사관이 폭로한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입수해 공개했으며,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전혀 보고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서울동부지검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환경부에 대한 압수수색 및 관련인들의 소환조사가 이어졌고, 이들 사이에서 ”청와대에 (해당 문건이) 보고됐다“는 취지의 진술이 나오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 논란이 된 ‘문화부 블랙리스트’와 판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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