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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감독 “북한 축구 뻥뻥 뚫려 가슴 아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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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데르센 감독.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데르센 감독.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대량 실점하며 무너지는 걸 보는 게 안타까웠다.”

2016년부터 2년간 북한대표팀 지도 #노르웨이 출신 지난해 인천과 계약 #“문선민 내줬지만 하마드 데려와 #올해는 좀 더 공격적 축구할 것”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의 욘 안데르센(56·노르웨이) 감독은 ‘전 직장’ 북한 축구대표팀 이야기를 꺼내자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지난달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3전 전패로 탈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0-4, 카타르에 0-6, 바레인에 1-4로 졌다. 3경기에서 무려 14실점(1득점)을 허용했다. 공격 전술은 롱볼 위주로 단조로웠고, 수비는 상대 개인기에 번번이 뚫렸다. 오죽했으면 한국 축구 팬들이 “저러다 모두 끌려가는 거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였다.

지난달 아시안컵에서 카타르에 0-6으로 완패한 직후 북한 선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져 허탈해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아시안컵에서 카타르에 0-6으로 완패한 직후 북한 선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져 허탈해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안데르센 감독은 지난 2016년 5월 북한축구대표팀을 맡았다. 처음에는 북한의 핵과 인권을 이유로 북한 행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안데르센 감독은 “축구를 통해 북한과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안데르센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북한은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게릴라처럼 배후를 침투하는 ‘빨치산 공격전법’을 펼쳤다.

하지만 안데르센 감독은 지난해 3월 계약만료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이유로 북한을 떠났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이 그의 연봉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를 대신해 36세 김영준 감독이 북한 지휘봉을 잡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데르센 감독.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데르센 감독.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19일 인천이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경남 남해에서 만난 안데르센 감독은 “아시안컵 당시 북한의 경기를 보고 놀라기도 했고, 실망하기도 했다. 내가 부임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전혀 다른 축구를 하더라. 내가 알지 못하는 선수들이 경기하는 걸 보면서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와 독일 이중국적인 그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2017년 12월 북한축구대표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한 모습. [사진 안데르센]

2017년 12월 북한축구대표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한 모습. [사진 안데르센]

안데르센 감독은 북한에서는 오후 6시가 넘으면 평양 시내가 깜깜해졌다고 했다. 대북 제재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탓이다. ‘한국 생활 2년 차’인 안데르센 감독은 “북한 생활은 색달랐다. 반면 서울은 유럽과 환경이 비슷해 만족스럽다. 빌딩이 높고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인들은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고, 친절하다. 한국인의 정이 뭔지도 안다”고 말했다.

북한축구대표팀 사령탑 시절 안데르센. [사진 안데르센]

북한축구대표팀 사령탑 시절 안데르센. [사진 안데르센]

남북 선수들의 차이에 대해 그는 “외국인으로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과 북한 선수들은 성향이나 성격,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하다”면서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한국은 자유국가이다 보니 선수들이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 선수들은 조직적이고 전투적인 기질이 강하다. 그라운드에서 모든 실력을 쏟아내는 건 북한 선수들이 잘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안데르센은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출신(1990년 프랑크푸르트)이다. 지난해 인천을 처음 맡았을 때는 공격축구를 펼치며 ‘강호’ 전북과 3-3으로 비기기도 했다. 하지만 강원에 0-7로 참패를 당한 뒤 ‘선수비 후역습’으로 전술을 수정했다.

그 덕분에 인천은 막판 4연승을 달리며 9위를 기록했다. 시·도민 구단 역사상 유일하게 단 한 번도 2부리그로 강등당하지 않은 팀은 인천이 유일하다. 그래서 축구 팬들은 인천 구단을 ‘잔류왕’이라고 부른다.

올 시즌 K리그는 3월1일 개막한다. 안데르센 감독은 “인천은 구단 사정이 어려워 빅스타 영입이 힘들다. 주전 공격수였던 문선민과 아길라르는 구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영입 제안을 받아 붙잡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몸값 대비 실력이 훌륭한 문창진·허용준·하마드(스웨덴)를 데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 시즌 1차 목표는 강등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전술적으로는 지난 시즌보다 공격적이고 파워 넘치는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데르센 감독.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데르센 감독.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구단 관계자는 “안데르센 감독은 철두철미하다. 훈련 때 ‘공격 앞으로’ ‘좋아!’를 끊임없이 외칠 만큼 열정이 강하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정지’라고 외친 뒤 즉시 작전판을 꺼내 설명한다”고 전했다. 안데르센 감독은 “선수들에게 항상 프로페셔널 정신을 강조한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에 경기를 뛰고, 평일에 술과 담배를 즐기는 생활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프로의식이 없다면 경기에 나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욘 안데르센은…

출생: 1963년 생(56세·노르웨이)
선수 주요경력: 노르웨이 축구대표팀 공격수
(27경기 5골),
1989~90 프랑크푸르트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감독 주요경력: 2008~09 독일 마인츠
1부리그 승격,
북한 축구대표팀(2016~2018)
아시안컵 본선진출 견인
K리그 성적: 2018년 6월 인천과 2년 계약.
지난 시즌 9위로 1부 리그 잔류

남해=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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