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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컬링의 기적을 다시, '뉴 오벤져스'가 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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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치콘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휠체어 컬링 대표팀. [사진 대한장애인컬링협회]

뵈치콘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휠체어 컬링 대표팀. [사진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지난해 겨울, 한국을 강타한 스포츠는 '컬링'이었다. 평창올림픽 은메달을 따낸 '팀 킴'에 이어 패럴림픽 4강에 오른 휠체어컬링 팀 덕분에 전국민이 컬링 전문가가 됐다. 특히 다섯 선수의 성이 모두 달라 '오성(五姓) 어벤져스'로 불렸던 다섯 명의 장애인선수들은 큰 감동을 줬다. 평창의 아쉬움과 감동을 베이징으로 이어가려는 휠체어컬링 대표팀 '뉴 오벤져스'를 13일 만났다.

평창패럴림픽 휠체어컬링 대표팀은 특별했다. 스킵 서순석(48), 리드 방민자(57·여), 세컨드 차재관(47), 서드 정승원(61)과 이동하(46)는 소속팀이 달랐다. 호흡이 중요한 컬링은 보통 선발전을 치러 한 팀이 국가대표로 나서지만 한국은 여러 팀 선수들을 모아 구성했다. 여자 컬링 대표팀은 전원이 김씨라 '팀 킴'이 불렸지만 다섯 선수의 성이 모두 달라 '오벤져스'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8 평창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최종점화자로 나선 서순석(왼쪽)과 김은정. 연합뉴스

2018 평창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최종점화자로 나선 서순석(왼쪽)과 김은정. 연합뉴스

휠체어컬링은 휠체어에 탄 채 스틱으로 돌을 밀어 보낸다. 몸을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빗자루같은 브룸으로 얼음을 문지르는 스위핑도 없다. 대신 흔들림을 막기 위해 다른 선수가 휠체어를 붙잡아준다. 40~60대로 구성된 선수들이 하나가 돼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선천적 장애가 아닌 중도장애를 입었지만 제각각의 어려움을 딛고, 컬링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선 스토리도 감동을 줬다. 패럴림픽 개회식에선 팀 킴의 '안경 선배' 김은정과 서순석이 함께 성화 최종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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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순석은 "패럴림픽이 끝난 뒤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고 격려해줘 고마웠다. 진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사인 요청도 많이 받았다"고 웃었다. 홍일점이었던 방민자는 "큰 무대가 처음이었는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동받았다"고 했다. 이동하는 "패럴림픽 이후 팀과 선수가 늘었다. 뿌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12일 개막한 16회 장애인겨울체전엔 사상 최초로 17개 시·도가 휠체어컬링에 출전했다.

평창패럴림픽 동메달 결정전을 마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인터뷰하다 눈물을 훔친 휠체어컬링 대표팀 백종철 감독(왼쪽)과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장진영 기자]

평창패럴림픽 동메달 결정전을 마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인터뷰하다 눈물을 훔친 휠체어컬링 대표팀 백종철 감독(왼쪽)과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장진영 기자]

영화 속 영웅들의 모임인 '어벤져스'는 멤버들이 그때그때 바뀐다. '오벤져스'도 새롭게 재편됐다. 예전처럼 단일팀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재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팀은 서울시장애인체육회다. 서울 팀엔 당시 오벤져스 멤버 중 서순석, 방민자, 차재관 3명이 뛰고 있다.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백종철 감독도 여전히 지휘를 하고 있다. 경남 소속 이동하와 전남 소속 정승원과는 태극마크를 두고 다투는 라이벌이 됐다. 서순석은 "이젠 상대로 만나지만 봐줄 수 없다"고 웃었다. 정승원과 이동하는 "2022년 베이징패럴림픽에는 서울 팀을 이기고 나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팀은 양희태(51), 민병석(46)까지 5명으로 구성됐다. 멤버는 바뀌었지만 대표팀은 이번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10월 스위스 뵈치콘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했고, 1월 키사칼리오컵에선 은메달을 따내는 등 좋은 성적을 연이어 내고 있다. 17-18시즌 세계 랭킹은 5위였지만 다음달 4일 스코틀랜드에서 개막하는 세계선수권 결과에 따라 더 올라갈 전망이다.

당시 오벤져스는 예선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중국에 역전패한 데 이어 동메달결정전에서도 캐나다에 져 아쉽게 메달은 따내지 못했다. 백종철 감독과 선수들은 결국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서순석은 "한동안은 충격에 빠져 멍하니 생각에 잠길 때도 있었다. 3개월 정도 지나니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방민자는 "마지막까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쉬웠다. 베이징 대회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고 했다. 차재관은 이름까지 차진호로 개명했다. 그는 "예전부터 고민했어는데 패럴림픽 이후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려고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백종철 감독은 "선수들 나이가 있다 보니 평창에서 체력적인 부분에서 많이 아쉬움을 남겼다"며 "이번 세계선수권도 4강까지는 무난할 것 같다. 마지막 집중력이 승부처"라고 했다. 백 감독은 "차기 패럴림픽 개최국 중국 선수들은 젊고, 척추를 못 쓰는 우리 선수들과 달리 절단장애인이라 힘을 잘 쓴다. 베이징 대회에서도 가장 강력한 상대"라고 했다.

13일 전국장애인체전 경기를 앞두고 몸을 푸는 선수들. [사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13일 전국장애인체전 경기를 앞두고 몸을 푸는 선수들. [사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패럴림픽엔 나서지 못했지만 현장에서 세 선수를 응원했던 양희태와 민병석의 마음도 간절하다. 양희태는 "보는 우리도 안타까웠다. 아울러 나도 저 무대를 밟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남은 3년간 더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했다. 민병석도 "패럴림픽은 모든 선수의 꿈이다. 꿈을 위해 계속 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2014 소치, 2018 평창 대회에 이어 세 대회 연속 출전을 노리는 서순석은 "은메달과 4위의 차이가 크더라. 팀 킴이 참 부러웠다"며 "베이징에선 꼭 평창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의정부=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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