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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으로 가맹점 유치 수당…무리한 제로페이 마케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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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한 커피전문점에서 제로페이를 이용한 결제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한 커피전문점에서 제로페이를 이용한 결제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다음달 1일 제로페이 정식 개통을 앞두고 서울시가 구청별로 목표 가맹점 수를 할당하고, 한 건에 1만5000원의 유치 수당을 지급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치를 돕는 기간제 직원을 임시로 채용했고, 복지포인트를 최대 20만원까지 제로페이로 쓰게 해 불만을 사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지난해 12월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0%로 낮춘다며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가입률이 저조하자 세금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등의 무리수를 연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실적 저조하자 구청 압박 #“소상공인 점포 50% 확보” 할당 #일부 지역 기간제 뽑아 모집 영업 #구청 직원 “영업사원 된 것 같다”

12일 서울시와 구청에 따르면 서울시는 25개 구청 관내 소상공인 점포의 50%를 제로페이 가맹점으로 유치하도록 목표량을 할당했다. 구청은 주민센터를 동원한다. A구청 관계자는 “서울시가 할당 목표를 준 뒤 담당 팀장이 주민센터에서 매일 실적을 보고 받는다”고 말했다. B구청의 제로페이 담당팀장은 “우리 구의 특성상 재래시장이나 지하상가가 많아 ‘전체 점포 수의 50%’라는 서울시 할당 기준을 채우기 쉽지 않다. 우리 일도 많은데 제로페이 영업까지 감당하기에는 솔직히 너무 버겁다”고 말했다. 이 구청 다른 직원은 “우리가 제로페이 영업사원이냐”고 말했다.

또 서울시 공무원과 25개 구청 직원은 올해 무조건 5만~20만원 상당의 복지포인트를 제로페이로 써야한다. 복지포인트는 공무원이 자기계발·문화생활 등에 쓰는 맞춤형 복지이며 급여와 다름없다. 4급 이상은 200포인트(20만원, 1포인트=1000원), 5급은 100포인트(10만원), 6급 이하는 50포인트(5만원)가 할당액이다.

공무원 복지포인트의 일부를 제로페이로 사용하라는 내용을 공지한 서울시 공문. [서울시]

공무원 복지포인트의 일부를 제로페이로 사용하라는 내용을 공지한 서울시 공문. [서울시]

서울시는 제로페이 가맹점 유치 건당 1만5000원의 수당을 지급한다. 당초 2만5000원이었으나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일자 줄였다. 일부 구청은 직원에게 ‘1인당 2건’ ‘1인당 1건’의 할당량을 부과했다. C구청의 주무관은 “제로페이 가맹을 권하면 ‘이미 통장·반장이 다녀갔다. 귀찮게 왜 그러냐’고 항의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런 식으로 제로페이 예산 38억원 중 24억원을 QR코드 배포(제로페이 확산) 지원금으로 쓴다. 이와 별도 예산을 책정해 구청당 기간제 직원 5명의 인건비를 석달간 지원한다. 1인당 700만원 씩 약 10억원(홍보비 포함)이 들어간다. D구청 관계자는 “유치를 맡은 통·반장이나 소상공인의 나이가 많다보니 스마트폰 앱과 자동이체 결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젊은 기간제 직원들이 따라다니면서 앱을 깔아주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재래시장 고객이 고령층이어서 제로페이를 못 쓸텐데 이런 식으로 가맹점을 늘리는 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최근 특별교부금 300억원을 제로페이 유치 실적에 따라 구청에 차등 지급하겠다고 밝히면서 구청도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유치 경쟁에 매달린다. 한 구청은 “우리가 10위 안에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부는 지난달 서울시 윤준병 행정1부시장을 만나 “강제 제로페이 실적할당, 강제 공무원 동원, 인센티브 사업, 구청별 평가를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데도 진도가 잘 안 나간다. 김소양 서울시의회 의원(자유한국당)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서울 소상공인 점포 66만 곳 가운데 5만8354곳(8.8%)만 신청했다. 김 의원은 “시민 세금을 가맹점 유치 영업에 쏟아붓고 있다. 실패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도 박원순 시장이 치적 쌓기를 위해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미 신용카드도 연매출 5억원 미만 실질 수수료가 0%”라면서 “제로페이는 가맹점이나 사용자 모두에게 번거롭기만 할뿐 큰 혜택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 김형래 제로페이추진반장은 “구청에 가맹점 유치 협조를 구한 것이지 강제 할당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인식 행정국장은 “구청 직원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여러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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