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란과함께하는명사들의시조] 고은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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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시조 짓기는 감히 이것이 처음이다. 웃어주기 바란다."

시조 두 편을 고은(73) 시인이 전송해 왔다. 단시조 '백록담에 올라'와 '백두영봉에서'이다. 시인의 말마따나, 고은 시인 최초의 시조 작품이다. 평소 이 칼럼에 관심을 보였다는 얘기를 멀찌감치서 들은 적 있지만,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보내올 줄은 몰랐다.

고은 시인이 시조에 무심했던 건 아니다. 시인은 일찍이 "국문학에서 고시조 가락은 시의 산문화가 뚜렷한 현대시조에 이르러서도 하나의 율령(律令)이 되어 마땅하다"고 밝힌 바 있다. 3장 6구라는 형식과 리듬이 시를 허술한 데 없이 살뜰하게 한다고, 시인은 여러 차례 말했다.시인은 승려 신분이었던 58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백록담에 올라'는 환속한 이듬해인 63년 가을, 한라산에 올랐을 때의 감회를 담은 것이다. 섬광처럼 스치는 시적 영감을 주체할 수 없던 무렵의 소산이다. 산정에 올라 사해를 둘러보며 살아온 날들에 대한 깨달음을, 불가를 떠난 시인은 '허위단심 한라백록 선바우'에 이르는 과정으로 표현했다. '내 꿈속 일만 물결이 그칠 줄을 몰랐'다 함은 만감이 교차한 뒤의 개안(開眼)과, 참여시인으로서의 변모를 암시한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고은 시인의 시조와 선시(禪詩)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시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고은 시인의 선시는 서양에서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씨도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선시의 우수성이 인정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해가 진다/나 소원 하나/살찐 보름달 아래 늑대되리'. 지난해 이탈리아의 빈센차 드루소 교수가 번역한 고은 시인의 선시집 '순간의 꽃' 첫 페이지에 나오는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이 선명한 이 짧은 시를 쓰면서 시인은 세계 유일의 시조를 신무기로 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지난해부터 시인은 "시조를 써봐야겠다"고 털어놨다.

'거문도'란 작품도 시조가 연상된다. '아이가 물었다/왜 우리는 여기서 살아?/할아버지가/먼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대답이 궁했다/동백꽃 피었다//바다 건너/여수 오동도에도 필 것이다' 조금 넘치는 듯 보이지만, 간결하게 절제된 단시조를 빼닮았다. 가난한 섬이 싫은 손자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저 멀리 큰 섬 오동도에도 우리 섬처럼 동백꽃이 핀다며 다독인다.

또 다른 시조 작품인 '백두영봉에서'는 지난해 8월 민족작가대회 당시의 감회를 옮긴 것이다. 첫 새벽, 그곳에 서면 한낱 인간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감동이 천지를 휘감는다. 이 시조는 해와 달이 한데 어우러지듯 겨레의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1906년 7월 21일 '대한매일신보'에 '혈죽가' 3수가 발표되었다. 하여 올해는 음악이던 시조가 문학으로 우뚝 선 지 백 돌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고은 시인은 "여기 이 두 편의 시조가 첫 작품인 만큼 이제부터 시조가 온 국민의 교양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짓겠다"고 다짐했다.

홍성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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