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앞에 놓인 두 가지 확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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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맨 왼쪽)을 11일 재판에 넘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기간 법원행정처장으로 일하며 이들 범행을 공모한 혐의를 받는 박병대·고영한(왼쪽부터) 전 대법관도 함께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연합뉴스]

검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맨 왼쪽)을 11일 재판에 넘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기간 법원행정처장으로 일하며 이들 범행을 공모한 혐의를 받는 박병대·고영한(왼쪽부터) 전 대법관도 함께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후 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다. 혐의는 재판개입부터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까지 약 40여개에 달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도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차장도 추가 기소된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기소되는 것은 헌정사상 최초다.

검찰, 양 전 대법원장 11일 기소 #재판개입·판사 블랙리스트 등 40여개 혐의 #일반 형사사건 구속 후 무죄율은 0.6% #특수수사만 종합하면 10%로 급격히 늘어

기소는 검찰 입장에서 피의자를 유죄로 판단해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행위다. 검찰 입장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두 전직 대법관은 유죄다. 이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으로 넘어갔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는 것은 수사 중 확보한 증거가 매우 단단하다는 뜻"이라며 "객관적 증거를 다수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라 말했다.

여당과 시민단체 등은 양 전 대법원장과 두 전직 대법관의 '친정'인 사법부가 공정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세 사람과 인연이 없는 판사를 찾기가 어려워 공정한 재판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확률적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두 전 대법관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검찰 기소 뒤 무죄율은 2017년 기준 0.6%(구속기소)와 1.87%(불구속 기소)에 불과했다.

2017년 총 3만 419건의 구속 재판 중 1심 무죄가 나온 경우는 211건, 불구속 재판 16만 4174건 중에 1심 무죄가 나온 경우는 3073건이었다. 최주필 변호사(법무법인 메리트)는 "구속이 됐다는 것은 범죄 혐의가 일부 소명됐기 때문"이라며 "방어권도 제한될 수밖에 없어 유죄 비율이 더 높게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양 전 대법원장과 두 전 대법관, 임 전 차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라는 검찰의 특수 수사로 기소됐다. 특수 수사란 고발이 아니라 검찰이 직접 사건을 인지해 시작하는 '대형 수사'를 말한다. 이 대형수사의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 보다 훨씬 더 높다.

중앙선데이가 2000년 이후 대검 중수부와, 중수부가 폐지된 후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이 구속 기소한 주요 권력형 비리 사건의 피의자 119명의 판결을 추적한 결과(▶중앙선데이 2017.4.30일자) 무죄율은 10.1%로 15배 이상 증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유죄 확률은 0.6%와 10.1%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검찰의 최정예 인력이 투입돼 수사가 진행되는 특수수사의 구속 후 무죄율이 더 높은 이유에는 여러가지 분석이 나온다. 일반 사건에 비해 법리가 더 복잡하고 정권에 따라 검찰의 무리한 수사 가능성이 있으며, 유력한 피고인이 변호인을 다수 고용해 방어권을 더 적극적으로 행사할 가능성도 높다.

검찰 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인지 수사의 경우 검찰이 특정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하는 경우가 있어왔다"며 "전체 무죄는 아니더라도 일부 무죄가 나온 경우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두 전 대법관, 임 전 차장의 혐의가 40여개에 달하는 만큼 법조계에서는 이 혐의 중 전부 무죄는 아니더라도 일부 혐의에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긴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긴다. [연합뉴스]

부장판사 출신의 여상원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경우 검찰과 변호인단의 법리다툼이 치열한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다"며 "수십여 개의 혐의 중 전부 무죄는 아니더라도 일부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법원은 국정농단 재판에서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의 기준과 적용 범위를 매우 좁게 엄격하게 때문이다.

재판연구관 출신의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은 수사 초기부터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이었고 같은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검찰이 확보한 증거가 다수고 일부 혐의가 소명돼 구속된만큼 유죄 판결 자체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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