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어느새 펼쳐진 고행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8강전> ●안국현 8단 ○롄샤오 9단  

4보(53~66)=안국현 8단이 53으로 늘자 롄샤오 9단의 다음 착수가 날카롭다. 54, 이 수는 안국현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순간 묵직한 후회감이 안국현의 목덜미를 엄습했다. 느슨하게 대처하는 사이 상대에게 급소를 찌를 기회를 내준 것이다.

기보

기보

돌이켜보면 53으로 얌전하게 늘어두는 대신 '참고도1' 흑1로 먼저 한 칸 뛰었어야 했다. 백2로 나갈 수밖에 없을 때 흑3으로 멀리 도망간 다음, 신속하게 흑5로 하변을 선점하면 편하게 반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뒀다면 뒤탈 없는, 흑의 순조로운 전개가 예상된다.

참고도1

참고도1

하지만 실전은 54로 허를 깊숙히 찔리는 바람에 흑은 일단 55로 웅크릴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백은 56으로 한걸음 먼저 달아났다. 마음이 급해진 안국현 8단은 우격다짐으로 백을 위협하기 위해 57을 뒀는데 이 또한 성급한 실수였다. 실수가 실수를 낳는다.

참고도2

참고도2

그렇다면 57은 어디에 둬야 했을까. '참고도2' 흑1로 백을 끊어 백2~8로 계속 늘어갈 때 흑9로 가볍게 뛰어놓는 것이 좋았다. 그런 다음 흑11로 하변을 선점하면 무리 없이 국면을 장악할 수 있었다. 실전은 58~64까지 롄샤오 9단의 반격에 대응할 수 있는 흑의 카드가 없다. 잇따른 두 번의 판단 착오로 안국현 9단의 고행길이 예상되는 바둑이다. 그는 이 가시밭길을 어떻게 해쳐갈 것인가.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