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권 찍는 것도 다 돈인데··· 세뱃돈, 꼭 새 돈 줘야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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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세뱃돈 준비 생각은 못 했는데, 그냥 5만원짜리 중에 깨끗한 걸로 주면 되지 않겠어요?"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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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앞둔 지난달 31일, 설 선물 세트를 손에 들고 지하철역으로 들어선 한영순(54)씨는 올해 세뱃돈을 신권(新券)으로 바꿀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씨는 올해 서른이 된 아들에게 가지고 있던 5만 원권 중 깨끗한 것 두 장을 골라 10만원을 세뱃돈으로 줄 계획이다.

세뱃돈을 넣어 줄 봉투를 찾아봐야겠다는 한씨의 말에 함께 있던 친구 정은숙(54)씨는 "아들한테 세뱃돈 주는데 봉투에 담아 준단 말이야?"하고 물었다. 정씨는 "세뱃돈을 새 돈으로 바꿔주거나 봉투에 담아 줘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다"며 "신권이든 구권이든 돈은 다 같은 돈 아닌데 꼭 그럴 필요가 있나"고 되물었다.

중앙일보는 설날을 앞두고 '세뱃돈=신권'이라는 공식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초등학생 형제를 키우는 나모씨도 "올해는 세뱃돈을 신권으로 바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나씨는 "아이가 어릴 때는 빳빳한 돈으로 세뱃돈을 줘 본 적 있는데, 오히려 조금 크고 나니 애들도 돈의 가치는 같다는 걸 알아서 일부러 바꿀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경호(38)씨도 부모님께 드릴 설 용돈을 따로 지폐로 준비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김씨는 "계좌로 드리는 것을 부모님도 더 편해 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빳빳한 '새 돈'이 좋아…독특한 봉투에 담아 주는 정성도

손주들에게 줄 세뱃돈을 신권으로 바꾼 허희춘씨가 신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수정 기자

손주들에게 줄 세뱃돈을 신권으로 바꾼 허희춘씨가 신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수정 기자

시중 은행들도 신권 교환을 자제하자는 뜻의 자체 캠페인을 벌이면서, 교환 금액도 제한하고 있다. 신권을 구비하기 위한 비용을 줄이자는 게 목적이다.

손주에게 줄 세뱃돈을 신권으로 바꾸려 은행을 찾은 허희춘(71)씨는 "손주가 셋인데 10만원씩 30만원을 바꾸려 했더니 한 사람당 20만원까지만 신권을 내준다고 한다"며 아쉬워했다. 허씨는 1만원권 새 지폐를 내보이며 "같은 돈이라도 새 돈으로 받으면 기분이 더 좋지 않냐"며 신권을 고이 봉투에 담았다.

은행마다 신권 교환 기간과 1인당 신권 교환 액수를 정해 공지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찾은 3곳의 은행 중 2곳은 이미 준비된 신권 물량이 소진된 뒤였다. 이수정 기자

은행마다 신권 교환 기간과 1인당 신권 교환 액수를 정해 공지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찾은 3곳의 은행 중 2곳은 이미 준비된 신권 물량이 소진된 뒤였다. 이수정 기자

점심시간에 은행을 찾은 사람들은 '신권 교환 종료' 표지판을 보고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하나은행 합정동지점 관계자는 "올해 본점에서 만 원권 신권 5000장 할당량을 받았는데 이틀 만에 다 소진됐다"고 말했다.

세뱃돈을 담아 줄 봉투를 직접 고르러 나온 시민들. 이수정 기자

세뱃돈을 담아 줄 봉투를 직접 고르러 나온 시민들. 이수정 기자

신권보다는 예쁜 봉투로 정성과 개성을 표현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날 서울의 한 문구점에는 독특한 세뱃돈용 봉투를 찾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어머니께 드릴 용돈 봉투와 조카들 세뱃돈 봉투를 사러 왔다는 한 시민은 "매년 봉투를 사러 온다"며 "얼마를 넣을지 보다 어떤 봉투에 담아 마음을 전할지를 더 고민한다"고 말했다. 실제 문구점에는 한복 그림이 그려진 봉투부터 복주머니 모양 봉투, 신년인사가 적힌 '세뱃돈 봉투 세트'도 있었다.

복주머니 모양 세뱃돈 봉투 등 세뱃돈을 넣는 독특한 봉투도 문구점에서 많이 팔린다. 이수정 기자

복주머니 모양 세뱃돈 봉투 등 세뱃돈을 넣는 독특한 봉투도 문구점에서 많이 팔린다. 이수정 기자

시중 은행, "신권 교환 수량은 늘 부족"

국민은행 관계자는 "아직 고령층에선 신권을 선호하는 고객이 많다"며 "은행 입장에선 여전히 신권이 부족하긴 하지만 세뱃돈으로 쓰기 위해 신권 교환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에 따르면 설 연휴 전 10영업일 간(2019년 1월 21일~2월 1일) 금융기관에 공급한 화폐 순발행액은 약 5조55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조2800억원)에 비해 5.1% 늘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공급 금액이 확대된 건 맞지만, 실제 발행된 화폐가 몇 장 늘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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