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근육 키우듯, 행복도 단련하니 커지더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행복(원제 How to be happy)
리즈 호가드 지음, 이경아 옮김, 예담, 424쪽, 1만7000원

일주일에 3회 30분씩 운동하라,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당신이 감사해야 할 일 다섯 가지를 떠올려라, 식물을 가꾸라(가급적 죽이지 말고), TV 시청 시간을 반으로 줄여라, 하루에 한 번 유쾌하게 웃어라….

이 책이 제시하는 '행복헌장 10계명'이다. 이대로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글쎄, 행복이 그리 쉽게 오는 것이던가 싶을 것이다. 더 있다. 매주 한 시간 배우자나 친구와 대화 나누기, 낯선 사람에게 미소 짓기, 매일 자신에게 작은 선물하기, 오랫동안 소원했던 지인들에게 연락해 만날 약속 잡기…. 흥미로운 건 이걸 실행했더니 정말 행복해지더라는 사실이다. 영국 런던 근교의 도시 슬라우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지난해 5월 영국 BBC는 4부작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심리학자.경영컨설턴트.자기계발전문가.사회사업가 등 6인을 모아 '행복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인 끝에 '행복헌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슬라우 시민 중 실험 참가자를 받았다. 실험이라고 별다른 게 아니다. 3개월 동안 '행복헌장'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행복'은 슬라우 실험 결과를 비롯해 행복과 관련된 각종 통계와 조사 자료 등을 망라한 이른바 '행복학 개론'이자 '행복대백과사전'이다.

책은 친구.돈.일.사랑.섹스.가족.자녀.음식.건강.운동.애완동물.휴가.공동체.미소.웃음.영성.나이들기 등 17가지 분야에 걸쳐 행복을 향한 노정을 샅샅이 탐색한다. "여럿이 있을 때 웃는 경우는 혼자 있을 때의 30배"라든가 "직장에서의 행복도는 60대가 가장 높고 30대가 가장 낮다" 등 각 장 머리마다 소개되는 각종 연구 결과, '부부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는 짜증나는 습관''가족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방법' 등 많은 권면들은 읽는 선에서만 그쳐도 충분히 유익하다. '가족과 싸우지 말라'는 대목의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매우 잔인할 때가 있다. 결코 가족이 우리를 버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공격적인 충동을 배출하기 위해 가족을 이용하고 학대한다"는 내용처럼 가슴에 새겨야할 조언도 솔솔히 챙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췄다면 평범했을 것이다. 책은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이론화하고 실험을 거쳐 일정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식의 접근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한결 설득력을 높였다. 슬라우 실험의 토대는 서구에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행복학(Happiology)과 개인의 강점과 미덕을 중시하는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다. 만인을 행복으로 이끄는 비법은 없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기술'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 행복학의 기본 전제다.

기술? 책에 따르면 행복이란 "바이올린 연주나 자전거 타기처럼 일부러 익혀야 하는 기술"이요, "연습할 수록 느는, 삶의 습관"이다. 직장 스트레스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날씨, 교통 상황, 경제 상황 등)과 어느 정도 통제가능한 것(동료의 지지, 피드백, 신뢰), 확실히 통제가능한 것(자신의 사고방식과 태도)으로 분류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많이 알고 있으면 있을수록, 또 그때 그때 적절히 실행하면 할수록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책은 또 물질적 충족보다는 정신적 투자에 부등호를 단다. 예컨대 복권 당첨자가 행복한 시간은 5년뿐! 그 이후에는 다시 당첨 전의 심리 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여분의 돈이 더 있다고 해서 인생이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연구 결과는 어떤가. "유전자와 교육이 행복을 유발하는 요인 중 50%라면 소득과 환경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40%에는 대인관계, 우정, 일, 공동체 활동, 운동이나 취미 생활 등이 포함된다."

심리테스트에서 행복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온 사람이 독감 백신을 맞았을 때 항체 생성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0%가 더 높다든가, 어렸을 때 많이, 활짝 웃었던 여성이 나이 먹어서 더 행복한 삶을 산다는 학계 보고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혹은 웃기는 소리라고 일축하기에는 슬라우 자원자들의 증언이 더없이 생생한데다 들이미는 연구 결과들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만만치 않다. 자, 슬라우 시민들처럼 한번 실험해보자. 인생의 프로작이 돼 줄 평범하지만 귀중한 수칙들을 따라서. 그러고보면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며 인생의 매순간을 즐기라"고 했던 오노 요코야말로 행복학의 권위자쯤 되지 않나 싶다.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