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이혼·문제아·인종차별 … 그래도 행복해지고 말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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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파이자 게네 지음, 김민정 옮김, 문학동네, 264쪽, 8500원

"방리외(파리 교외 빈민가)의 프랑수아즈 사강". 2004년 알제리 이민 2세대 소녀인 파이자 게네(사진)가 '내일은 키프키프'를 발표했을 때 프랑스 문단은 이렇게 무서운 신예를 주목했다. 당시 열아홉살이었던 게네는 고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쓴 원고가 우연히 출판사 눈에 띄어 출간 두 달 만에 3만부가 팔리는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키프키프'는 아랍어로 '사랑하다, 행복하다'는 뜻. 주인공 소녀 도리아는 제목처럼 현실의 절망 속에서도 내일의 행복을 키워간다.

모로코 이민 2세인 도리아는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단둘이 파리 변두리 영세민용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빠가 엄마를 떠난 이유는 아들을 낳기 위해서. 사회복지사들은 도리아의 집을 밥 먹듯 드나들며 도리아를 문제아 취급한다. 도리아는 학교 공부에 취미가 없다는 이유로 심리 치료까지 받게 된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인 하무디 오빠는 감옥살이를 하고 난 뒤 계속 건달 신세다. 도리아의 말마따나 "개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책은 자칫 우울할 수 있는 주제에 발랄하고 감각적으로 살을 붙여나간다. 어른들과 사회의 위선을 직시하는 10대 소녀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는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 등을 옮긴 번역자가 최대한 입말에 가깝게 애쓴 번역 덕도 상당하다. 이런 식이다. "운명이란 참 개똥 같다. 왜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니까. 뭘 하든 항상 날 엿먹인단 말이지.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빠가 우릴 버리고 떠난 건 저 어딘가에 이미 적혀 있는 일이라고. (…) 그러니까 우리는 그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배우들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시나리오 작가께서 글재주라곤 털끝만큼도 없다는 사실이다. 쓰려면 좀 멋지게 쓸 것이지."

또 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가난한 이들의 성경이었다면 요즘은 TV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나보다." 작가는 세계화가 심화되면 80%의 하류층이 TV와 싸구려 대중소설 같은 '티티테인먼트'에 몰두하게 될 것이라는 한스 피터 마르틴의 '세계화의 덫'이라도 읽은 걸까.

지난해 파리 교외의 이민자 폭동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톨레랑스(관용)'를 내세우지만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온존하는 사회의 단면도 소녀의 날카로운 눈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무디 오빠는 어렵게 일자리를 얻지만 재고품을 훔쳤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해고당하고 만다. "오빠는 흑갈색 고수머리에 거무스레한 피부를 지니고 있다. 부리부리한 두 눈은 밀크커피 색깔이고…. 오빠는 이런 것들 때문에 자기가 도둑놈이라는 누명을 쓰게 됐다고 믿고 있다." 문장마다 스며나오는 리얼리티의 무게감은 이 성장소설을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게 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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