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車 관세 어떻게 부과할까…미국의 세가지 ‘카드’

중앙일보

입력

웬디 커틀러 前 한·미FTA 협상대표 방한

29일 방한한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수석대표. [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

29일 방한한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수석대표. [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

“통상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통상교섭본부는 오늘도 일하러 간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이런 글을 올리고 29일 출국했다. 이처럼 비장한 글을 올린 건 무역확장법 232조 등 통상 현안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다음 달 6일까지 미국에서 정·관계 고위 관계자를 만나 무역확장법 232조에 대한 한국 입장을 설명한다.

수입산 차량에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인 미국 정부가 어떤 ‘카드’를 만지작거리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흘러나왔다. 미국 정부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인물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도 빠르게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웬디 커틀러 부회장은 29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개최한 ‘2019 글로벌 통상전쟁 전망과 대응과제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커틀러 부회장은 양국의 통상 현안을 다루면서 ‘뜨거운 감자’인 무역확장법 232조를 꺼냈다.

미국 상무부는 다음달 27일 수입산 자동차에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중앙포토]

미국 상무부는 다음달 27일 수입산 자동차에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중앙포토]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한 수입 상품에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규정한 일종의 ‘무역장벽’ 법안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차·부품에 고율 관세(25%) 부과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韓, 3가지 시나리오별 대응전략 세워라”

주목할 부분은 이 자리에서 흘러나온 미국 정부의 움직임이다. 미국 정부가 ▶별도 협약이 없는 모든 수입차에 20~25%의 관세를 부과하는 1안 ▶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전기차·공유차 유관 기술에만 관세를 부과하는 2안 ▶1안과 2안의 중간 수준의 제재를 가하는 3안을 두고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 커틀러 부회장의 귀띔이다.

‘2019 글로벌 통상전쟁 전망과 대응과제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커틀러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 [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

‘2019 글로벌 통상전쟁 전망과 대응과제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커틀러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 [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

커틀러 부회장은 “미국 행정부는 3가지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한국산 차량에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여부는 한미 무역 관계를 좌우할 와일드카드(wildcard·거대한 변화를 추동하는 돌발변수)”라고 말했다.

따라서 3가지 시나리오별로 각각 대처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커틀러 부회장의 조언이다. 그는 “캐나다·멕시코는 이미 지난해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비준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합의했다”며 “이제 미국 행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한국과 유럽연합(EU)에 무엇을 요구할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산 차량에 1안을 적용한다면 국내 경제는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국이 관세를 1% 올리면 한국의 대미수출이 1.23% 감소한다고 전망했다. 5년(2019~2023년) 동안 661억7700만달러(74조3000억원)의 수출순손실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전경련이 주최한 ‘2019 글로벌 통상전쟁 전망과 대응과제 세미나’에 커틀러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이 참석했다. [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이 주최한 ‘2019 글로벌 통상전쟁 전망과 대응과제 세미나’에 커틀러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이 참석했다. [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

최남석 교수는 “한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총산출액은 188조97억원 감소하고(최종수요 기준), 부가가치는 51조5682억원 감소할 것”이라며 “이로 인해 국내 자동차 산업 일자리가 직접 64만6016개 감소하고, 파급효과로 이종 산업에서 추가로 51만1475개의 간접적인 일자리까지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이 한국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비슷한 우려를 내놨다. 미국이 멕시코·캐나다·유럽연합·일본 등 경쟁국 관세를 면제하고, 한국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자동차 총생산이 8.0% 감소한다는 전망이다.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중앙포토]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중앙포토]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미국이 자동차·부품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할 경우 수출 감소율이 가장 큰 국가로 한국(22.7%↓)을 꼽았다. 지금 미국에 자동차 1000대를 수출한다면, ‘폭탄 관세’ 부과시 773대만 팔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시장에 자동차를 많이 수출하는 일본(21.5%)·중국(21.3%)·독일(21.0%)과 비교할 때, 유독 한국이 큰 타격을 입는다고 분석한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자동차에 적용한다면 한국에 재난 수준의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방위비 협상과 연계는 잘못된 길”

최근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미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을 대신해 한국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커틀러 부회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2년 동안 안보와 무역을 연계한 입장을 취했다”며 “안보와 무역은 서로 별개 이슈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9일 미국으로 출국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중앙포토]

통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9일 미국으로 출국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중앙포토]

미국 상무부는 이르면 다음 달 17일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문제를 검토한 보고서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로부터 90일 이내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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