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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없이 화기애애…미리 치르는 명절 모임의 좋은 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73)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음 주면 구정이다. 나이 드니 명절이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없었으면 싶을 만큼 부담스러운 날이다. 요즘 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땐 찾아오는 가족이나 일가친척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가고 싶은 건 마음뿐이니까….

해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상을 차려서 초대하는 올케는 우리 집의 화합을 이루는 대표다. 정말이지 따라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사진 송미옥]

해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상을 차려서 초대하는 올케는 우리 집의 화합을 이루는 대표다. 정말이지 따라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사진 송미옥]

지난주엔 명절을 미리 앞당겨 행하는 친정가족 모임이 있어서 남동생네를 다녀왔다. 해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상을 차려서 초대하는 올케는 우리 집의 화합을 이루는 대표다. 정말이지 따라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한 조상에게서 나온 형제자매가 서로 소통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조상들이 바라는 모습이고 성공한 인생 아닐까 싶다.

큰동생이 가족마다 과자 박스를 한 통씩 선물로 주고 아이들에겐 미리 세뱃돈을 챙겨 넣어주었다. 이쁜 손 글씨로 편지까지 써서. 매번 동생 부부의 마음 씀이 대견하다 못해 존경스럽다. 어느 형제간이든 맏며느리의 마음 씀이 화기애애의 기본이 된다. 시대가 바뀌어 아무리 집이 넓어도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오기가 쉽지 않지만 안 자고 가면 벌금이라며 끌어안으니 밤새 수다 떨고 편안하게 뒹굴다가 온 것 같다.

손주들이 어려서 이불에 오줌이라도 싸면 안 된다고 걱정하니 올케의 한마디가 기분을 좋게 한다. “형님~ 세탁기와 건조기가 왜 있나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요.” 말도 이쁘고 마음씨도 이쁘다. 딸과 사위는 그 말에 홀짝 술잔을 비운다.

나도 해마다 명절이 오면 조카들 세뱃돈을 챙기며 늘 하는 일거리가 있다. 봉투 속에 든 금액은 적지만 겉에는 예쁜 글씨로 사랑 가득 마음을 담는다. 올해도 좋은 말을 한 개 골라서 봉투에 썼다. '너는 우리의 봄'이라는.... [사진 송미옥]

나도 해마다 명절이 오면 조카들 세뱃돈을 챙기며 늘 하는 일거리가 있다. 봉투 속에 든 금액은 적지만 겉에는 예쁜 글씨로 사랑 가득 마음을 담는다. 올해도 좋은 말을 한 개 골라서 봉투에 썼다. '너는 우리의 봄'이라는.... [사진 송미옥]

나도 해마다 명절이 오면 시댁 친정 동생들의 학교 다니는 조카들 세뱃돈을 챙기며 늘 하는 일거리가 있다. 봉투 속에 든 금액은 적지만 겉에는 예쁜 글씨로 사랑 가득 마음을 담는다. 주는 사람 기분도 참 좋지만 받는 사람도 좋다고 한다. 올해도 좋은 말을 한 개 골라서 봉투에 썼다. ‘너는 우리의 봄’이라는…. 나만의 글씨체로 글씨를 그리다 보면 이럴 땐 60이 넘은 나도 신세대 마음이다.

새해 명절이 다가오면 요즘 젊은이에겐 꼰대 소리 같은 말을 하고 또 한다.
“세배 절을 할 땐 말이야.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땐 오른손을 왼손 위로 올리고 큰절한단다. 부모님은 우러러보는 존재라는 마음가짐으로 머리 숙여 큰절하는 거야.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차례상에 절을 하잖아. 그땐 오른손을 왼손 아래 내려 감싸고 큰절을 하는 거야. 돌아가신 부모님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겠다는 뜻이야. 반절은 형제간이나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야. 부모에겐 큰절이야.”

80세가 넘은 나의 멘토 언니가 어른에게 세배하는 자세를 늘 말해 주셨는데 명절이 가까워져 오면 내 아이들에게 꼰대 소리로 전해 내려온다. 요즘 젊은이들이야 “에그~ 또 저 옛날이야기” 하겠지만 어린 손주들은 곧잘 따라 한다.

문화란 게 별건가? 내 나라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살아가는 이야기가 곧 문화 아니겠나? 아무리 서구문화가 들어와서 세상을 획 바뀌어 놓아도 우리는 고유의 문화를 보전하고 지키는 게 국력이라고 생각한다.

손주들을 쭉 세워놓고 절 연습을 시킨다.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고 함께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고 웃고 떠들어야 새해를 보낸 기분이 난다. [사진 송미옥]

손주들을 쭉 세워놓고 절 연습을 시킨다.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고 함께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고 웃고 떠들어야 새해를 보낸 기분이 난다. [사진 송미옥]

명절날 어른이나 아이 구분 없이 악수하며 포옹을 하고 즐거워한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겠지만 새해만이라도 조금은 불편한 한복을 차려입고 어른에겐 큰절을, 형제들과는 맞절하며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고 함께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고 웃고 떠들어야 새해를 보낸 기분이 나는 것이다.

손주들을 쭉 세워놓고 절 연습을 시킨다. 오른손을 왼손 위에 살포시 얹고 “하나, 둘, 셋~ 아이고 내 새끼들 절도 참 잘하네.” 친가에 가서 세뱃돈 받을 희망에 몇 번이나 엎어졌다 일어났다를 하며 깔깔거린다. 예쁜 녀석들이다.

막판에 6살 둘째 녀석이 하는, 나는 혀가 잘 안 돌아가 따라 하기도 힘든 말이 신세대 아이란 걸 입증한다. “할머니 이렇게 절을 잘하면 동그라미 세 개짜리 말고 네 개짜리 주시는 거지요? 그거라야 포켓몬스터 바이블레이드 같은 거 살 수 있다고요. 헤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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