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 전 주식 팔아 54억 ‘먹튀’…투자자 울리는 부정사례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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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기업 사주이자 회장을 맡고 있던 A씨는 임원으로부터 유상증자 제안 보고를 받았다. A씨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지인 8명 명의의 19개 차명계좌에 나눠 보관하고 있던 회사 주식 345만749주를 팔아치웠다.

증권선물위원회 주식 불공정 거래 주요 제재 사례

유상증자는 주주로부터 투자를 더 받아(유상) 주식 수를 늘리는 걸(증자) 뜻한다. 전체 기업 가치엔 큰 변화가 없지만 주식 수는 늘어나는 효과가 난다. 기업이 ‘돈 가뭄’을 겪을 때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사례가 많아, ‘유상증자=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A씨는 유상증자를 한다는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기 전에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팔아 차익을 챙겼다. A씨가 이렇게 가져간 부당 이익은 54억1700만원에 이른다.

자료=증권선물위원회

자료=증권선물위원회

#. B씨와 C씨는 코스닥 상장사 한 곳을 무자본 인수한다. 무자본 인수란 명칭 그대로 기업이 진 빚을 떠안는 조건으로 돈을 내지 않고 인수하는 걸 의미한다. 두 사람은 이 회사를 사들인 후 바로 주식 전량을 매각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해외 유명업체와 사업을 추진한다’는 자료를 냈고, ‘신규 사업을 추진한다’며 유상증자도 진행했다. 결국 이 회사는 자금 집행, 회계 처리 불투명을 이유로 상장 폐지됐다. 유상증자 등을 통해 모은 돈은 B씨와 C씨가 다른 기업 인수 자금으로 써버린 후였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주식 불공정 거래 주요 제재 사례’를 24일 공개했다. 모두 증선위가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조사 내용을 넘겨받아 지난해 4분기 심의해 제재하고, 수사기관에 고발ㆍ통보한 사건이다.

증선위는 지난해 4분기 미공개 정보 이용 32건, 시세 조정 12건, 사기적 부정 거래 15건, 보고 의무 위반 45건 등 총 104건을 심의해 조치했다. 위 사례에 나온 A씨와 B씨, C씨는 지난해 10월 증선위 의결을 통해 검찰에 고발됐다.

브리핑하고 있는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브리핑하고 있는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유명 주식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먼저 사들인 비상장 종목을 두고 회원들에게 “조만간 상장될 예정이다. 지금이 매수할 마지막 기회”라고 부추겨 주가 상승을 유도한 D씨도 지난해 9월 검찰에 고발됐다. D씨는 자신이 사들인 가격의 260배 넘는 차익을 얻었다. 이후 주가가 폭락하면서 손실은 D씨가 운영하던 카페 회원들이 다 떠안았다.

증선위 관계자는 “대규모 유상증자 등 미공개 중요 정보에 접근 가능한 상장사 최대 주주와 법무법인ㆍ회계법인ㆍ증권사 등 관련 임원과 전문가가 연루된 불공정 거래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처리했다”며 “기업 사냥꾼, 자금 공급책, 계좌 공급책 등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조직적ㆍ계획적으로 상장사를 무자본 인수(M&A)한 후 주가를 조작하는 사례는 일반 투자자뿐 아니라 해당 기업에도 막대한 피해를 초래함으로 최우선으로 적발ㆍ제재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도 주식 불공정 행위는 신속하게 조사해 엄중 제재ㆍ조치하고 수사 당국과의 공조도 더 탄탄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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