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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물류비 떠넘기기’ 관행 뒤 숨는 대형마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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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끙끙 앓아왔던 ‘물류비 떠넘기기’ 관행을 수면 위로 끌어내 줘 고맙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납품업체에 일명 ‘후행(後行) 물류비(유통업체 물류센터에서 매장까지 드는 물류비)’를 떠넘긴 혐의(대규모유통업법 위반)로 롯데마트에 대해 시정 명령과 함께 4000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는 본지 보도를 접한 독자가 보내온 e-메일이다. 본지 기사에는 “대형마트의 물류비 ‘갑질’ 때문에 힘들었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본지 1월 22일자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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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대형마트는 공정위의 ‘무리한 제제’라며 펄쩍 뛰었다. 전국 배송 물류망을 갖지 못한 중소 납품업체가 대형마트 물류센터를 활용해 물류비·재고 관리비 등을 절약하는 혜택을 보는데 공정위가 과도한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후행 물류비를 납품업체가 부담하는 건 유통업체·납품업체 간 거래 관행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관행’은 해명이 될 수 없다. 관행 중에선 털고 가야 할 악습(惡習)도 있다. 물류비 떠넘기기를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단가 후려치기’다. 한 청과업체 대표 이모(53)씨는 “‘물류비가 추가로 발생했는데 건건이 청구할 수 없으니 단가에서 3%를 깎겠다’고 하더라. 그래놓고서 계약서에 ‘물류비’ 항목이 없다고 하면 ‘눈 가리고 아웅’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 식품업체 대표 김모(45)씨는 “물류비를 내라면 내겠다. 그런데 어떨 때는 3%, 어떨 때는 5% 내라는 식으로 고무줄이라 신뢰가 안 간다”고 하소연했다.

유통 단계마다 수수료 마진을 떼는 건 유통업의 본질이다. 현실적으로 납품업체 스스로 전국 마트 각 지점까지 배송할 수 없는 점에서 대형마트 해명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상도(商道)는 지켜야 한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거도 없이 갑이 을에게 일방적으로 ‘단가 몇 % 인하’ 식으로 매기는 게 문제다. 공정한 상거래라면 ‘언제, 어디까지 배송하는 데 드는 물류비를, 정확히 얼마 내야 하는지’에 대한 계약이 투명하게 성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 같은 제조업체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국내 유통업체는 안방에서만 호랑이다. 세계를 주름잡는 아마존(미국)·알리바바(중국)는 서비스로 먹고사는 ‘유통 공룡’이다. 대형마트가 글로벌 기업, 나아가 아마존처럼 진화하려면 ‘물류비 떠넘기기’ ‘단가 후려치기’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다드인 투명한 상거래 질서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관행에 젖은 기존 유통업체를 철저히 깨뜨리면서 성장한 회사가 아마존이라 하는 얘기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