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롯데마트 물류비 논란…4000억원 과징금 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어디까지가 납품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물류비인가’를 두고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와 ‘유통 공룡’ 롯데가 맞붙는다.

“물류센터에서 매장까지 배송비 #납품사에 부담지우는 건 불공정” #공정위, 유통업 최대 과징금 추진 #롯데 “물류센터는 납품사도 이익” #업계 “유통 비즈니스 불가능해져”

공정위가 납품업체에 일명 ‘후행(後行) 물류비(유통업체 물류센터에서 매장까지 드는 물류비)’를 떠넘긴 혐의(대규모유통업법 위반)로 롯데마트에 대해 시정 명령과 함께 40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제재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물류비 떠넘기기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후행 물류비를 납품업체에 부담시키는 건 유통업계에서 일반화된 관행인 데다 과징금이 최종 확정될 경우 단일 유통업체 역대 최대 규모라 파장이 예상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백화점·대형마트·인터넷쇼핑몰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감시하는 공정위 유통거래과는 지난달 초 이런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작성해 위원회에 상정했다.

롯데마트가 최근 5년간 300여 개 납품업체에 후행 물류비를 떠넘겨 왔다는 혐의에 대해서다.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기소장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이 보고서를 롯데마트 측에 보내 2월 초까지 의견 회신을 요청했다. 이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유통 불공정 관행 근절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공정위가 겨눈 ‘후행 물류비’ 관행이 롯데마트만의 상황이 아니란 점이다. 식품업체에서 라면을 납품할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물류 허브센터가 대전이라면 식품업체는 대전 센터까지 라면을 배송하고 해당 물류비(선행 물류비)를 부담한다. 그런데 라면이 대전 센터에 도착한 이후 마트의 전국 각 지점까지 배송할 때 발생하는 후행 물류비도 식품업체가 부담한다.

한 중소 납품업체 대표 이모(45)씨는 “거래 계약서를 쓸 때 후행 물류비 명목으로 제품 단가를 3~5% 인하해 납품하기를 요구한다”며 “롯데뿐 아니라 이마트·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나 백화점·편의점은 물론 쿠팡 같은 소셜커머스 업체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산정한 ‘4000억원’이란 단일 유통업체 역대 최대 과징금의 파장도 만만치 않다. 업계에선 다른 유통업체까지 같은 혐의가 적용될 경우 과징금 액수가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본다. 한 대형 식품업체 대표 김모(56)씨는 “판촉비·판매장려금과 달리 물류비는 무조건 내야 하는 비용이다. 얼마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이 일방적으로 내야 해 말도 못 하고 끙끙 앓아 왔던 내용인데 공정위가 처음 건드렸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대형마트의 이익을 위해 물류센터를 이용하는데, 그 이후 발생한 물류비까지 납품업체에 부담시키는 것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라는 입장이다.

‘후행 물류비’는 유통업계 전반의 관행…백화점·온라인몰도 과징금 땐 조 단위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물류센터까지만 배송하고 싶은 납품업체도 무조건 각 지점까지 배송해야 한다. 최종 납품 장소가 각 지점이라면 납품업체가 물류센터에서 마음대로 물건을 빼거나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상식적으로도 물류비란 배달하는 곳까지 부담하는 것이지, 배달 이후 발생하는 비용까지 포함하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와 엇갈린 해석도 나온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통업체와 납품업체가 납품 장소를 물류센터로 약정하지 않은 이상 각 지점까지 상품을 납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납품업체가 부담하는 것이 민법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김천수 효성 법무실장(부사장)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절 발간한 ‘물류센터를 이용하는 경우 물류비 부담 주체에 관한 새로운 법적 접근’ 논문에서 “물류센터를 이용하면 물류비·재고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유통업체는 물론 납품업체에도 이익이다. 그런데도 물류센터가 오로지 유통업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롯데는 총력을 다해 방어에 나섰다. 방패로 공정위 출신 인사가 다수 포진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정거래팀을 선임해 방어 논리를 준비 중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물류센터가 없던 과거에는 납품업체가 물류비를 부담해 왔다”며 “물류센터를 만들면서 이용료 개념으로 후행 물류비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납품업체도 물류센터 이용을 통해 적잖은 혜택을 봐 왔다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또 “후행 물류비를 받지 않는 대신 납품업체에 전국 지점에 배송하라고 하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만약 마트가 (후행 물류비를)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물류센터 설립·유지 비용이 현실적으로 상품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경쟁 대형마트에도 불똥이 튀었다. 공정위가 롯데 외에 이마트·홈플러스는 물론 쿠팡 등 다른 업체에까지 혐의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어서다. 한 대형마트 공정거래 담당 임원은 “후행 물류비를 유통업체에 부담하라고 한다면 유통 비즈니스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첫 타깃으로 굳이 롯데를 꼽은 데 대해선 ‘롯데 손봐주기’의 일환이란 해석도 나온다.

공정위의 최종 처분과 과징금 규모는 제재 결과가 확정되기까지 예단하기 어렵다. 공정위는 이르면 3월 전원회의에서 최종 심결(법원의 판결에 해당)을 내릴 예정이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