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대상은 학교 아닌 교육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외고의 경우 평준화 보완을 위해 20년 이상 이어져온 제도다. 한데 교육부가 느닷없이 "2008학년도부터 거주지역(광역시.도) 안에 있는 외고에 대해서만 입학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입시제도를 바꾸려면 최소 3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상식조차 깬 것이다. 교육부가 내년에 5~10개를 시범 운영한다고 밝힌 공영형 혁신학교도 그 실체와 개념이 모호하다. 이런 정책의 중심에는 지난해 1월 취임한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있다. 그는 교원성과급제.교장공모제.교원평가제 등 많은 정책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정착시킨 게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경희대 김종호 교수는 "평준화 틀을 유지하려고 학교 간 경쟁은 못하게 하고, 한편으론 교원평가제와 공영형 학교를 도입하는 모순 때문에 혼란이 거듭된다"고 지적했다.

◆ "코드 맞추기 그만해야"=정책 혼선의 이유 중 하나는 청와대와의 코드 맞추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선언했다. 2005년부터 정부 부처들은 혁신에 매달렸다. 교육부도 새로운 학교를 만들겠다며 이름을 '공영형 혁신학교'라고 지었다. "도대체 학교 이름에 왜 혁신이 들어가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말 자립형 사립고를 20개 이상 만들겠다고 했다. 올 1월 노 대통령의 '양극화 발언'이 나오자 입장을 번복했다. 성균관대 이재웅 교수는 "정권이나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일관된 교육정책을 펴야 하는데 억지로 코드를 맞추는 것은 교육 수장의 도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 "이율배반적인 정책"=자사고나 외고 같은 사립학교는 교과과정 편성과 교원채용 과정에서 자율성이 별로 없다. 하지만 교육부는 공영형 혁신학교에 교원과 재정을 우선 배정한다고 발표했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평준화 보완책으로 20여 년 전 도입한 외고에는 제재를 하면서 공영형 학교에 특혜를 주는 건 이율배반"이라며 "교육부가 걸핏하면 혁신을 앞세우는데 혁신 대상은 일선 학교가 아니라 바로 교육부"라고 비난했다.

교원평가제와 교원성과급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은 학교.교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미 하버드대는 올 3월 '공교육 개혁 보고서'에서 "무능한 교사는 퇴출시키고 학생 성적을 높인 교사에겐 더 많은 봉급을 주라"고 제안했다.

교육부도 교사평가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간의 차이와 경쟁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무조건 평준화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만 평가를 받으라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또 엄연히 존재하는 특목고와 일반고, 강남.북, 도시와 농촌 학교 간 실력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8년 대입부터는 일률적으로 내신을 50% 이상 반영토록 했다.

◆ "눈치보기 벗어나라"=교육부가 전교조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많다. 전교조는 ▶교원평가제▶교장공모제▶방과 후 학교▶시험문제 공개▶수준별 이동수업 등 거의 모든 교육부의 정책에 반대한다. 교원성과급의 경우 2001년 첫해에 100% 차등지급했다. 그러나 전교조가 반납투쟁을 벌이자 다음해부터는 골고루 나눠줬다. '밀어붙이면 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연세대 백태승 교수는 "교원평가제나 성과급은 교단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필요한 제도"라며 "국민적 동의가 이뤄진 정책에 대해선 교육부가 소신있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 교육부 엄상현 기획홍보관리관 반론="공영형 혁신학교는 교육부가 자체적으로 만든 새로운 유형의 학교이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난주에 보고했고 사전 조율은 전혀 없었다. 공영형 학교에 재정을 지원하고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은 특목고나 자사고처럼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일 뿐 평준화 정책과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외고가 과열 입시경쟁의 핵심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제도를 변경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교원평가제나 성과급 차등지급은 전교조 등이 반발해도 이번에는 예정대로 강행하겠다."

양영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