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펀드다]"중국에 몰방했던 아픈 과거, '반 토막 펀드'는 잊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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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투자 이미지. [중앙포토]

펀드 투자 이미지. [중앙포토]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얼마 전 이런 말씀을 하셨죠. "인기는 바람과 같다고요." 펀드의 세계도 마찬가지에요.

[2019년 펀드평가]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

'반 토막 펀드'라뇨. 제 예전 별명을 도대체 어디서 듣고 오셨죠? 그래요. 제가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에요.

옛날 얘기를 들려달라고요? 제가 데뷔했던 2007년 10월은 전국에서 '펀드 붐'이 거세게 일었던 때죠. 2007년 한 해 동안 주식형 펀드에만 70조원의 자금이 몰렸을 정도니까요. 저를 만든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당시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이었어요.

데뷔 땐 정말 꿈만 같았어요. 사람들이 점심도 거른 채 증권사 창구로 달려와 번호표를 뽑고 1시간 넘도록 기다려 제게 돈을 맡기곤 했거든요.

하늘을 찌르는 인기 때문에 현수막까지 등장했죠. 증권사들이 ‘우리도 인사이트 펀드 팝니다’라는 현수막을 길가에 걸어놓을 정도였어요.

데뷔 한 달 만에 제 몸집이 4조원을 넘겼으니 말 다했죠. 인기 비결이 뭐였냐고요? '중국' 그리고 '몰방'이에요.

베이징 천안문 광장. [중앙포토]

베이징 천안문 광장. [중앙포토]

저는 국내 최초 '글로벌 스윙 펀드'로 소개됐죠. 스윙 펀드는 아무 데나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펀드에요.

특정 국가나 지역은 물론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 투자 자산의 종류에도 제한받지 않았죠.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대상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회사의 포부가 제 소개에 따라붙었죠.

제가 데뷔했던 시기는 상하기 증시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때였어요. 그 전까지 2000포인트 선에 머물렀던 상하이종합지수는 6000포인트 고지에 올라섰죠.

글로벌 스윙 펀드였던 저는 모든 역량을 중국에 '몰방'했습니다. 2008년 1월 말 40%였던 중국 투자 비중은 같은 해 12월 말 76%까지 올라갔어요.

그게 자충수가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렇게나 강하게 시장을 쓸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철옹성 같았던 중국 증시도 갑자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상하이지수는 꼭 1년 만에 1700포인트 아래를 드나드는 처지가 됐죠.

자료 미래에셋자산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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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사태를 온몸으로 받아냈어요. 정확히는 펀드 붐을 타고 제게 투자했던 많은 분이 그걸 온몸으로 받았죠.

2008년 한때 제 수익률은 마이너스 58.1%까지 내려갔어요. 맞아요. '반 토막 펀드'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그때예요. 점심까지 걸러가며 제게 돈을 맡겼던 사람들이 이제는 앞다퉈 돈을 빼가기 시작했어요.

2007년 말 제 주머니(수탁고)에는 4조6900억원까지 돈이 있었어요. 그런데 2008년 이후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급하게 쪼그라들었죠. 지난해 말 기준으로 2500억원까지 줄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가만히만 있던 건 결코 아니에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체질 개선에 나섰죠.

중국 대신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에 대한 투자를 늘렸죠. 중국 투자는 왕창 줄였고요. 한때 중국에 대한 투자 비중이 0.12%였던 적도 있어요.

지금은 중국에 7% 정도를 투자하고 있어요. 북미 지역에는 79% 정도를 투자해요. 적정한 수익률을 확보하기 위해서죠.

자료 미래에셋자산운용

자료 미래에셋자산운용

현재 누적 수익률은 62.5%에요. 이렇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2008년 최저 수익률을 기준으로 보면 285%의 수익률을 올린 셈이 돼요.

그동안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시겠죠? 지금은 그래도 "효자 다 됐다"고 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마음의 위로를 얻고 있죠.

그러니 부탁드릴게요. 제 예전 별명은 저 깊은 곳에 넣어주세요. 이제 더는 '반 토막 펀드'가 아니니까요.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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