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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 ‘팀킴’ 진실게임…“앞길 막았다” vs “배신 당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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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호 25면

지난해 11월 15일 기자회견을 한 팀킴 멤버들. 왼쪽부터 김영미·선영·은정·초희 선수.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15일 기자회견을 한 팀킴 멤버들. 왼쪽부터 김영미·선영·은정·초희 선수. [중앙포토]

지난 11일, 경북체육회가 여자컬링팀 김민정 감독을 면직 처리한다는 공문을 냈다. 사유는 ‘훈련불참 및 근무지 이탈 등 불성실 근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킴’이었다. ‘의성 마늘소녀’가 쓴 얼음판 겨울동화는 1년도 못 돼 잔혹동화가 돼 버렸다.

‘부당대우’ 거듭 주장한 선수들 #“2022년 베이징 도전하려 했는데 #감독단이 우릴 찢어놓으려 했다” #‘면직’ 억울하다는 김민정 전 감독 #훈련일지·녹취록 등 제시하며 반박 #“언니처럼 배려했는데 일방적 매도”

감독과 선수 5명이 모두 김씨라 ‘팀킴’으로 불린 이들은 2018 평창겨울올림픽 여자컬링에서 아시아 최초로 은메달을 땄다. 경북 의성 출신 시골 소녀들의 좌충우돌 출세기는 컬링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7일, 팀킴은 호소문을 내고 ‘김경두 교수(전 경북컬링훈련원장)와 일가족(딸 김민정 감독, 사위 장반석 믹스더블 감독)이 팀을 사유화하고, 폭언과 강압을 일삼았으며, 선수들에게 돌아가야 할 상금과 격려금도 불투명하게 처리했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1주일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대한체육회가 곧바로 팀킴에 대해 5주간 합동감사를 벌였다. 감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장 감독은 지난해 말로 경북체육회에서 계약 해지됐다.

지난 9일 대구에서 김 감독 부부를 만났다. 김 감독은 “감사 결과도 없이 소명 기회도 주지 않은 채 한 가족을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도 되느냐”고 격앙했다. 1000페이지가 넘는 자료(녹취록·카톡 캡쳐·영수증·훈련일지·공문 등)를 갖고 나온 그는 “감사팀에 이 모든 자료를 넘기고 조목조목 설명했다”고 말했다.

팀킴 멤버 3명과도 통화했다. 김영미 선수는 몇 가지 질문에 답했다. 김은정·선영 선수는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팀킴과 김 감독의 엇갈린 주장을 정리했다.

팀킴 선수들이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했다고 주장하는 김민정 감독과 장반석 감독. [정영재 기자]

팀킴 선수들이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했다고 주장하는 김민정 감독과 장반석 감독. [정영재 기자]

▶아들 유치원 행사 강제동원 공방

김민정=큰아들(7)과 선수들이 2년 동안 한 아파트에서 살며 정이 많이 들었다. 아이가 ‘이모, 보고싶어요. 운동회 때 놀러오세요’하고 영미에게 직접 전화했다. 그 뒤 두 차례 더 의사를 물어봤더니 ‘좋죠 좋죠, ○○이랑 노는 거면’이라고 했다. 영미·선영이와 장혜지가 왔다. 아이가 청군이라 티셔츠도 어두운 색으로 맞춰 입고 두 시간 정도 애들과 놀았다. 사회자가 불러내 인사하고, 학부모 요청으로 사인해준 것 뿐이다. 유치원 교사들이 ‘(강제동원은) 둘째아이 쪽 일인 줄 알았어요. 어머니 괜찮으세요?’ 라고 전화를 해 주더라.

김영미=○○이와 통화한 건 맞다. 아이가 보고싶긴 했지만 내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공식 행사에 나가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씀드렸다. 김 감독에게 여쭤봤으나 장 감독 개인 일이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마지못해 선영이한테 요청해 같이 갔다.

▶상금 불투명 집행 의혹

김민정=상금 통장은 항상 코치실에 있었다. 장 감독이 ‘상금 통장은 몇 번째 캐비닛에 있으니 언제든지 꺼내서 확인해 봐라’ 했다. 여자 선수와 외국인 코치 물품 등을 살 때 선수 본인들이 카드로 계산하고 나중에 상금에서 가져간 적도 많다. 회식이나 놀러갈 때 얼마씩 내야 하면 ‘그거 상금으로 해요’ 하고, 지출 내역을 알려주고 서명하라고 하면 ‘뭐하러 읽어봐요’ 하던 애들이다. 지난해 8월 팀 신발·셔츠 맞출 때도 경애가 카드 결제하고 상금에서 받아갔다. (장 감독은 두꺼운 파일을 보여주며 “지출 내역을 전부 모은 영수증이다. 하나라도 버렸으면 어쩔 뻔했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영미=(김경두) 교수님이 팀 미팅 하실 때, 장 감독한테 몇 번이나 중간정산해서 알려주라고 하셨다. 정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 년동안 한 번도 통장 내역을 보여준 적이 없다. 우리가 돈에 대해서, 얼마 썼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얘기해 달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었다.

김민정 감독이 증거물로 제시한 훈련일지. [정영재 기자]

김민정 감독이 증거물로 제시한 훈련일지. [정영재 기자]

▶격려금·후원금 행방

팀킴=선수 개인에게 준 격려금은 모두 입금되었으나 팀으로 받은 격려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 장 감독이 증거로 배포한 고운사 1200만원도 카톡에서 의견만 물었을 뿐 그 후로 언제, 얼마만큼 사용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의성군민 기금 또한 행방을 알 수 없다.

김민정=의성군에서 나온 3000만원은 장 감독이 ‘군에서 알아서 개인배분하든지 경북체육회랑 상의해서 처리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계좌번호를 알려준 적도 없는 장 감독에게 2800만원, 나한테 200만원이 입금됐다. 경북체육회 지침을 기다리며 돈을 빼서 코치실에 넣어뒀다. 고운사에서 받은 1200만원(1000만원권 수표, 5만원권 40장)도 영미가 나한테 ‘언니 갖고 있어요’라며 줬다. 돈은 코치실 라커에 넣어뒀고, 단톡방에서 ‘어디다 쓸까 투표하자’ ‘전부 회식비로 써도 되나’ 의논하지 않았나.(장 감독은 “모든 행사에 거마비가 나온 건 아니다. 경북경찰홍보대사 위촉식 같은 건 공익 차원이라 거마비가 없었다. 선수들이 ‘돈이 나왔는데 안 준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정 배제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다정했던 팀킴의 모습. [중앙포토]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다정했던 팀킴의 모습. [중앙포토]

김민정=은정이는 평창올림픽 전부터 “올림픽 끝나면 성적 관계없이 결혼하고 빨리 아기 갖고 싶다”고 했다. 팀 입장에선 8년을 키운 스킵인데…. 다른 스킵 키울 동안 2년만 더 하고 아기를 갖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본인 뜻이 완강했다. 어쩔 수 없이 경애를 스킵으로 올리고, 다른 선수들 포지션도 조정했다. 은정이는 작년 7월에 결혼해서 9월에 임신을 했는데 임신 사실을 두 달간 알리지 않았다. 영미도 올 3월에 결혼한다.

김영미=감독단이 평창올림픽 이후에는 저희 얘기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은정이가 결혼하려고 ‘언제 하는 게 좋겠어요’라고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가 교수님한테 얘기하는 걸 까먹었다. 니가 편한 시간을 잡아라’ 였다. 우리랑 소통하려 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느꼈다.

▶김민정 감독 훈련 태도

팀킴=아주 오래전부터 선수들끼리 훈련을 지속해 왔다. 김 감독은 출근한 날을 세는 것이 더 쉬울 정도로 훈련장에 나오지 않고, 훈련장에 나온 날에도 훈련에 대한 어떤 지시도, 코칭도 없었다. 우리는 감독님 없이도 열심히 훈련을 해왔고, 외국인 코치들과 함께하며 좋은 성적을 냈다.

김민정=나는 1999년부터 경북체육회 선수로 뛰면서 수많은 대회에 입상했고, 국제연맹의 지도자·심판 자격증을 땄다. 팀킴은 중·고등학교 때 취미로 컬링을 시작한 아이들이다. 어떡하든지 선수들 실력 올리려고 1인다역을 했다. 손 동작 하나하나 사진 찍고, 경기 중 작전, 멘탈 유지, 의사소통 방법 등 꼼꼼하게 기록을 남겼다. 훈련 뒤 선수들이 한 말 다 녹음해서 받아 적었다. 대구 집을 떠나 온 가족이 컬링장 근처 아파트에 자비로 월세를 살면서 훈련해 왔다.

김 감독은 “선수들은 나를 ‘언니’, 장 감독을 ‘형부’라 불렀다. 뭐든지 터놓고 얘기하라고 했다. 선수들을 외부로부터 지켜주고, 꼭 성공시키고 싶었다. 감독 이전에 언니로서 배려한다고 한 게 이 모양이 됐다. 올림픽 끝나고 남은 건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 갑상샘암 판정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 안 살았는데 일방적으로 파렴치한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팀킴 선수 뒤에 배후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컬링 팀에 합류해 여자 선수 연봉의 절반 좀 넘게 받았지만 사명감으로 일했다. 억척같이 일해서 키운 선수들한테서 등에 칼을 맞은 꼴”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영미 선수는 “우리는 베이징(2022 올림픽)에서 더 큰 도전을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감독단이 선수들을 찢어놓으려는 게 눈에 보였다. 섭섭한 마음은 피차 마찬가지다. 불신이 쌓이면서 사태가 이렇게까지 가 버렸다”고 말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 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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