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인구 2천만…거국적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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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24일부터 5월2일까지 중국 절강성항주시와 영파시에서 열린 제1회 「응씨배세계프로바둑선수권전」 결승전에 대한 중국측의 관심과 열의는 한마디로 거국적이었다.
대만의 은퇴재벌인 응창기씨가 마련한 이 바둑대회에 대해 중국측은 중앙정부의 고위관리를 대회장소로 대거 파견, 대회진행과 외빈접대에 만전을 기했다.
TV에서는 대국이 있던 4월25, 28일과 5월2일 대국 해설내용을 2∼3시간씩 할애해 생중계했고 전국 각지의 신문기자 50여명이 대회기간중 현지에 파견돼 보도에 열을 올렸다.
또 제1, 2국이 있었던 항주시에서는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공개 해설회장을 시내 3곳에 마련, 바둑팬들을 끌어모으기도했다(수용인원 1천5백명).
이 해설회장의 입장료는 5, 10, 15원의 3가지로 주요 입장객들은 학생들. 근로자들의 평균월급이 2백원(한화 3만8천원정도)이 좀 못되는것에 비해선 엄청나게 비싼 요금인데도 해설회장은 만원 사례 였다.
이처럼 중국이 자국 마련 대회가 아닌데도 큰관심을 쏟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추정된다. 우선 바둑사상 최초로 세계 최고수를 가리는 대회결승전에 중국기사인 섭위평 9단이 진출했다는 점을 꼽을수 있다.
섭9단의 중국내 인기는 우리로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
중일슈퍼대항전에서 일본의 고수들을 차례로 연파하기 시작한 최근 5∼6년사이 섭9단은 중국에선 등소평 다음으로 잘 알려진 유명인사다.
다음으로 꼽을수 있는 것은 바둑에 대한 중국정부의 적극적 장려 정책. 중국에선 바둑을 건전한 스포츠로 간주, 체육부 산하의 중국위기협회를 중심으로 바둑 보급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40여명에 달하는 전업기사(우리의 프로기사에 해당)들에게는 정부가 직접 봉급을 주고있고 각종 바둑대회가 전국규모 5, 6개를 포함, 수십개에 달한다.
이들 대회중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대회는 중국정부가 주최하는 전국위기대회 단체전·전국11개성이 아마추어기사와 전업기사를 포함해 선수단을 구성, 각축을 벌인다.
또 중국의 전국TV방송인 CCTV에서는 1주에 3번씩(1회 30분) 바둑강좌를 방송하고 각급학교에서는 특별활동으로 바둑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지관계자들이 추정하는 중국의 바둑인구는 2천만명정도.
그밖에 이번 대회에 중국정부가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이유로 대만과의 관계개선도 염두에 둔 것 같고 대회를 통해 획득하는 외화수입도 고려된 듯했다.
한편 이번 대화를 마련한 대만의 응창기씨는 바둑에 개인재산을 모두 쏟아부은 바둑광으로 우리에겐 다소 괴짜로 비쳐지는 인물이다.
응씨는 과거 중국에서 바둑이 가장 성행했던 절강성 영파시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바둑에 심취, 평생동안 바둑연구와 보급에 큰 관심을 쏟아왔다.
우리나라의 한국기원격인 대만의 응창기위기교육기금회의 장이기도 한 그는 은행원으로 인생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 대만정부은행의 부행장까지 역임했고 총통의 비서실장도 잠시 지낸적이 있다.
은행가를 은퇴한 뒤에는 방직공장 3개를 가진 실업가로 변신해 성공했다.
지금은 사업에서 손을 떼고 바둑보급에만 전념하고 있으며 지난 87년 개인재산을 모두 털어 5백만달러를 기탁, 이번 대회를 마련했다.
응씨가 밝히는 대회개최목적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연구한 바둑규칙, 즉 응씨룰의 보급과 바둑발전.
바둑대회사상 최고인 40만달러의 우승상금을 내걸고 화제를 뿌리며 대회를 개최하는 동기로는 다소 싱겁게 느껴진다.
바둑관계자들은 응씨의 대회개최 동기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을 하고있다.
우선 생각해 볼수 있는 것이 중국인으로서 바둑의 종주국 위치를 되찾고 싶다는 욕망이다.
현재 일본이 차지하고있는 종주국의 자리에 대해 바둑의 발원국으로서 중국인의 한사람인 응씨가 갖는 욕심은 쉽게 이해할수 있다.
이러한 욕심은 그가 만든 응씨룰이 중국의 바둑규칙을 토대로 일부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엿볼수 있다.
응씨룰에 대해 바둑전문가들은 ▲흑의 덤부담(8점)이 너무 크다 ▲흑백 1백80개씩의 돌이 꼭 사용돼야 한다 ▲공배까지 일일이 메워야 하는등 번거롭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대중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응씨는 굳이 자신의 룰을 고집해 대회에 적용하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종주국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노력으로 응씨배대회 구상이 발표된 직후 부랴부랴 후지쓰배를 만들어 지난해부터 개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밖에도 대만의 국제적 지위가 점차 하락함에 따라 일본 또는 우리나라와의 바둑교류에서 다소 서운한 대접을 받았다는 감정도 작용했음직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만정계의 실력자들과 인연을 대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응씨의 지위에 근거해 관계자들은 대만이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전초작업의 의미도 있다고 보고있다.
응씨배대회의 이런 정치적 성격에 대해 응씨자신은 공식적으로 항상 부인하고 있지만 지난해 북경에서 예선전을 개최한데 이어 결승5번대국중 세번을 다시 중국에서 개최했고, 또 남은 두번의 대국도 현재 대만정부가 진행중인 중국과의 교류관계법 논의가 완료되는 올7∼8월께 대만에서 개최할 의사를 비추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응씨배대회의 정치적 성격을 부인하기가 힘들다.
만일 남은 두번의 결승대국이 대만에서 개최된다면 중국의 호위평9단은 공산당원으로서 대만에 입국하는 첫 인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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