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드디어 ‘북한군=주적’을 삭제한 우리 국방백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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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국방부가 발표한 ‘2018 국방백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백서에서 ‘북한군=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새 백서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2년 전 발간한 국방백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이라고 해 대비태세 방향이 명확했다. 그런데 이번 백서는 우리 군의 주적관을 애매모호하게 흐려놓았다.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당면한 과제지만, 현존하는 북한의 대규모 군사력과 핵 등 대량살상무기는 엄연한 핵심 위협이다.

백서는 북한 핵 위협에 대해서도 얼버무렸다. 그제 주일미군은 북한이 핵무기를 15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2020년엔 10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이번 백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50㎏과 고농축우라늄 상당량을 보유하고, 핵무기 소형화 능력도 상당한 수준”이라고만 했다. 북한 핵능력을 의도적으로 축소한 표현이다. 이런 자세의 국방부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결연히 대비할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없애는 수준의 ‘반쪽 비핵화’가 합의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남겨둔 핵무기로 우리를 상시 위협할 수 있다.

유사시 주일미군을 후방지원해 한국을 도와줘야 할 일본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백서는 ‘일본-중국’의 기존 서술 순서를 뒤바꿨다. 지난 백서엔 일본과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번엔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이웃”으로만 규정했다. 아무리 양국 사이에 역사 마찰이 있어도 안보 차원에선 일본이 우방이다. 어떤 경우에도 군은 ‘정치적 이해’보다는 적과 동맹에 대한 단호한 인식은 물론 확고한 유사시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