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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생각은

자원봉사도 세계화가 필요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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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푸르덴셜 생명이 주최하는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 대회에서 한국 청소년 봉사자 대표로 선발돼 지난달 초 푸르덴셜 미국 중.고생 자원봉사 대회에 참석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동양문화에 비해 격식 없이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외국인을 보면서 자원봉사에 대한 세계적인 시각을 간접 경험하고, 자원봉사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다.

포토맥 강이 흐르는 워싱턴의 한 호텔에 미국 청소년 자원봉사자 100여 명과 한국.일본.대만에서 초청된 청소년 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5일 동안 이들과 자원봉사에 대해 토론하면서 사랑이 중심이라는 공통점과 함께 문화.사고방식으로 인해 봉사를 보는 시각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미국 학생과 아시아 학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다. 어떤 측면에선 서양인에게 보기 좋게 비칠 수 있지만 한국이 복지사회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예의나 격식을 중요시하다 보니 상하관계가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나라가 됐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가부장적인 문화는 다소 사라졌지만 상하관계적인 예의범절에는 예외가 없다. 특히 윗사람에게 제안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문화 속에선 청소년이 자유롭게 자원봉사 활동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어른들에게 도움을 구해 봉사하는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학생은 공부만 하면 되지 왜 이런 걸 하니" 혹은 "어떻게 너희를 믿고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등의 부정적인 시각이다. 격려보다 "봉사는 어른의 몫이지 학생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는 생각이 더 많은 것 같다. 분명 이런 장벽들은 청소년이 자원봉사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반면 수평적이고 의견을 개진하는 데 적극적인 미국 학생은 봉사에 대한 사고방식도 크게 달랐다. 이들은 자원봉사 범위와 기획력이 매우 광범위했다. 아시아 친구들의 자원봉사는 자원봉사센터 등을 중심으로 한 노력이나 위문 봉사가 많았다. 나 역시 전공인 국악을 활용해 아프거나 연로한 노인들을 방문해 마음을 치유하는 위문 봉사를 주로 했다. 그러나 미국 청소년의 자원봉사는 지역 기업체로부터 엄청난 후원금을 얻어 봉사활동을 다양화하거나, 환경 보전을 위한 법 제정 활동을 한다든지, 지역 사회를 위해 라디오 방송국을 만드는 등 어른이나 할 수 있음 직한 일들을 거뜬히 해내고 있었다. 미국 학생의 봉사 규모가 크고 범위가 넓은 데는 어른들의 끊임없는 후원과 애정도 한몫하고 있었다.

미국 학생의 부모님들도 만났는데, 자식들의 자원봉사를 뒤에서 적극 후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부모님들도 이렇게 하면 우리 봉사활동도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국의 중.고교생은 어릴 때부터 입시를 위해 하루 종일 학교생활과 학원.과외에 시달린다. 부모님들은 자원봉사 활동보다 1초라도 더 공부하길 바란다. 학교에서 의무화한 봉사활동 20시간은 부모님들이 나서 위조된 봉사 기록을 제출하기도 한다. 자원봉사의 순수한 목적을 잊고 단지 학교 성적을 잘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다.

자유롭고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았던 미국 학생들,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을 보면서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가짐이 생활화된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삶의 방식이 자원봉사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진정으로 마음에서 시작한 학생들의 봉사활동과 더불어 학부모.선생님의 지원이 있을 때 한국도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자원봉사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미영 광주예술고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