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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지각생 한국, 메디치 가문이 선생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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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호 01면

[SPECIAL REPORT] 인공지능 ‘메디치 전략’

‘메디치(Medici) 전략’.

무역으로 번 돈 과학·예술에 투자 #유럽 르네상스 발판 마련 #조급증 떨쳐낸 일본·캐나다 등 #환경·교통·헬스케어 기술 선도 #시류 넘어서야 판 뒤집기 가능

메디치 가문은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무역과 금융업으로 번성했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을 조건 없이 과학과 예술에 투자했다. 르네상스를 사실상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메디치 전략이 600여 년이란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인공지능(AI) 시대에 재조명되고 있다. ‘딥 러닝(Deep Learning)의 아버지’ 후쿠시마 구니히코(福島邦彦) 일본 퍼지논리시스템연구소 수석 과학자는 최근 중앙SUNDAY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지금 AI 시대를 이끄는 나라를 보라”며 “캐나다와 일본은 모두 ‘AI 겨울’ 시기에 메디치 가문 사람들처럼 투자했다”고 말했다.

AI 겨울은 정부와 기업의 투자가 급감했던 시기다. 지금까지 1970년대와 90년대 두 차례 찾아왔다. 기대감과 성과 사이에 커진 간극 때문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경험 탓일까. 전문가들이 요즘 AI 붐을 보는 눈이 조심스럽다. 후쿠시마 교수는 “AI 유포리아(euphoria·도취감)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부분적으로는 AI 상품이 등장했다. AI 스피커가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곧 무인자동차가 거리를 달릴 태세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인간을 닮은 로봇이 생산현장을 차지할 것이란 예측도 제기됐다. 4차 산업혁명은 시대의 상징어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영국, 일본, 중국 등 AI 분야의 선도국뿐 아니라 후발주자들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정보기술(IT) 후진국인 프랑스는 2022년까지 15억 유로(약 1조95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환경과 교통, 헬스케어 분야 AI를 집중적으로 키울 계획이다. 독일은 2025년까지 30억 유로(약 3조9000억원)를 AI 분야에 투입한다.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인 자동차 분야 등에 AI를 접목한다는 요량이다. 개별 국가만 AI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니다. 유럽연합(EU)은 200억 유로 투자안을 지난해 발표했다. 한국 정부도 본격적으로 AI 드라이브에 나설 채비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혁신”이라며 “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새로운 시장을 이끄는 경제는 바로 혁신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혁신을 위해 정부는 올해 AI와 데이터, 수소 경제 등 3대 플랫폼 영역에 예산 1조5000억원을 지원한다. 2023년까지 10조원 정도를 전략적으로 투입한다. AI 투자에 봇물이 터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후쿠시마 교수는 “인간의 뇌 메커니즘 등엔 아직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인간의 뇌 메커니즘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아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이 조만간 등장할 것이란 기대가 조만간 충족되기 힘든 상황이란 얘기다. 이처럼 기대와 성과의 차이가 크면 세  번째 AI 겨울이 찾아올 수 있다. 국내 연구자인 이경전(인공지능) 경희대 교수는 “국내외 연구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실사구시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뇌를 재현하는 쪽으로 집중되면 결국 현실성이 떨어져 과거처럼 AI 겨울이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경제에서 유포리아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혁신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제인웨이 사모펀드의 워버그핀커스 이사는 최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시장경제 역사에서 어떤 기술에 대한 유포리아가 없으면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기대감 또는 도취감이 자본을 철도나 항공기, IT 등에 집중해 주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후엔 역풍이 불었다.

AI 연구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이후 AI붐 뒤에는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왔다. 후쿠시마 교수는 “한국은 AI 분야에서 후발주자”라며 “후발주자가 선두주자가 되려면 AI 겨울 같은 시기가 와도 투자의 모멘텀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로 메디치 가문처럼 유행을 초월해야 한국이 AI 분야의 현재 판도를 깰 수 있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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