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인공지능 ‘메디치 전략’
“난 행운아다.”
60년대 NHK서 조건 없는 후원 #마음껏 AI에 몰두 “나는 행운아” #일본도 80년대 들어선 결과 중시 #미 국방부·CIA 등도 돈줄 죄어 #멀리 내다보고 기초연구 늘려야
‘딥 러닝(Deep Learning)의 아버지’ 후쿠시마 구니히코 일본 퍼지논리시스템연구소 수석 과학자가 한 말이다. 그는 영미권에서 연구비가 줄어 연구자들이 힘겨워할 때 인공지능(AI)의 기초 분야를 탐험했다. 그는 1960~70년대 기계가 사람의 손글씨를 인식할 수 있는 이론을 개발했다. 그런데 그는 서울시와 KAIST가 연 글로벌AI콘퍼런스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 중에 자신은 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귀가 솔깃했다. 중앙SUNDAY가 그를 따로 만난 이유다.
- 세상의 관심이 멀어지면 연구자금도 지원받기 어렵지 않나.
- “난 행운아다. 60년대 로봇 연구는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NHK는 지금과는 달리 돈이 많았다. 연구자금을 지원받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 NHK라고 했나? 일본 국영 방송사에서 AI 연구를 했다는 게 놀랍다.
- “하하! 맞다. NHK는 방송사다. 애초 난 교토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한 뒤 NHK 오사카지국의 주조정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NHK 부설 연구소로 발령받았다. 그때 개인적으로 품고 있던 AI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 방송기술 연구도 아니고, NHK가 AI 연구를 허락했다는 게 흥미롭다.
- “내가 연구소를 출근한 첫날 소장과 면담했다. 그가 소장 자리 뒤편에 있는 NHK 로고를 가리키며 ‘저 NHK는 잊어버려도 좋다!’며 ‘정말 하고 싶은 연구를 해 봐라!’라고 말했다.”
- NHK가 중간에 연구 결과를 보고하라고 하거나 중간 점검을 하지 않았나.
- “그런 절차는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연구 결과를 일정 기간 안에 꼭 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당시 NHK는 르네상스 메디치 가문 닮아
후쿠시마 교수는 “그 시절 NHK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메디치 가문은 무역과 금융으로 번 돈을 바탕으로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 과학과 예술에도 많은 돈을 후원했다.
- 사실 NHK처럼 먼 미래를 보고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하는 일본을 많은 한국인이 부러워한다.
- “요즘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중앙과 지방 정부의 연구기금이나 기업의 후원을 받으려면 3~5년 안에 구체적인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요즘 후배 연구자들이 결과가 불확실한 기초 연구에 나서기 힘든 이유다. 난 행운아였다.”
- 연구기금과 기업이 언제부터 연구결과를 중시하기 시작했나.
- “오래 됐다. 80년대 중반 이후다. 일본 경제가 좋지 않은 90년대 중반부터는 결과를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요즘 NHK는 AI 연구에 투자하고 있지만 주로 2020년 도쿄올림픽에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초보다 응용 부문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즘 일본 과학계 “10년 뒤 노벨상 힘들 것”
- 최근 일본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다. 기초과학 투자 덕분이 아닌가.
- “요즘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는 연구 지원이 활발한 70년대 전후에 탐구에 몰두한 사람들이다. 그때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기초과학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요즘 일본 과학자들이 ‘10~20년 뒤에 일본인이 노벨상 받기 힘들 수 있다’고 걱정하는 까닭이다.”
후쿠시마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이른바 1차 ‘AI 겨울’을 끝내는 계기가 됐다. 겨울 동안 AI에 대한 세상의 관심과 자금 지원이 확 줄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연구가 거의 답보상태였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빠른 경제성장 덕분에 NHK 등이 AI 연구를 지원했다. 후쿠시마 교수는 “조건이 없는 자금(cash with no strings attached)이 많았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그 바람에 일본은 2차 붐 시절에 세계 AI 개발을 주도했다.
- AI 연구 붐과 겨울이 교차하는 게 흥미로웠다. 왜 그랬는지가 궁금하다.
- “인간의 뇌를 모델화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컴퓨터 등이 갖춰져야 한다. 1950~60년대 1차 붐 때 당장 로봇 같은 것이 탄생할 줄 알았다.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 1차 붐 때 연구비는 주로 누가 댔나.
- “그때는 냉전이 한창이었다. 미 펜타곤(국방부)과 CIA(중앙정보국) 등이 자금을 지원했다. 내가 듣기로는 CIA가 러시아어를 즉시 영어로 통역해 줄 AI를 원했다. 하지만 이론적으론 가능했지만 제품화하기엔 장애가 많았다.”
- 소형 컴퓨터가 가능한 80년대 말 이후엔 왜 AI 연구가 동면에 빠졌나.
- “영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각종 연구기금의 성과를 재평가했다. 그때 AI 연구는 자금 투입 대비 성과가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퍼졌다. 다시 연구비가 줄어들었다.”
- 현재 AI 붐도 한계에 봉착할까.
- “그럴 수 있다. 미래를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기대와 성과 사이에 간극이 큰 분야가 AI다. 3차 AI 겨울이 찾아온다고 경고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다.”
-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 “AI 신경생리학 등 기초 분야에 꾸준한 투자가 중요하다. 일본이 미국이나 영국보다 늦게 로봇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이 연구자금을 줄일 때 일본은 유지했다. 한국도 3차 AI 겨울이 다가오면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응용 분야보다 기초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차기 AI 붐을 주도할 수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후쿠시마 구니히코(福島邦彦) 일본 교토대학에서 1958년 전자공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8년 뒤인 66년에 교토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실제 AI 연구는 NHK 방송 연구원으로 65년에 시작했다. 그는 “내 머릿속에서는 69년에 딥 러닝 기초 개념이 정리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신경망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