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풀풀 날리는 공사장 먼지…국내 미세먼지 절반 여기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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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의 한 초등학교 공사 현장에 흙무더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서울 구로구의 한 초등학교 공사 현장에 흙무더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던 지난해 11월 7일 서울 구로구의 한 초등학교 공사장.

공사 현장 한가운데에 거대한 흙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방진 덮개가 없다 보니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그대로 공기 중에 날렸다.

굴착기가 흙을 퍼내자 주변이 금세 뿌연 먼지로 덮였다.

공사장 인근에서 수목원 조경관리를 맡은 이우진(46) 씨는 “공사가 시작된 이후 공기가 나빠졌다. 어떤 날에는 바람이 불 때 흙먼지가 눈에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이해순(50) 씨 역시 “근무하다 보면 차에 흙먼지에 쌓이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미세먼지 배출 절반은 ‘날림먼지’ 

서울 구로구 한 초등학교 공사 현장에 흙무더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서울 구로구 한 초등학교 공사 현장에 흙무더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실제로 중국발 미세먼지 등 국외 영향을 제외하고 국내 미세먼지(PM10) 배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공사장 등에서 발생하는 날림(비산)먼지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공개한 ‘2015년 국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미세먼지(PM10) 총배출량은 23만3177t(톤)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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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도로와 건설공사장·나대지·농경지 등에서 날리는 비산먼지는 연간 10만9633t이나 됐다.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의 절반에 가까운 47%가 날림먼지에서 나온 것이다.

비산먼지 중에는 건설공사장이 3만8221t, 도로 재(再)비산먼지가 2만7573t을 차지했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에는 날림먼지 발생 사업장에 물 뿌리기, 방진 덮개 깔기, 먼지 억제제 뿌리기 등 날림먼지 발생 억제를 위한 시설조치기준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설조치 기준을 위반 시에는 최대 3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공사장 먼지 피해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시설조치기준을 준수하더라도 바람이 세게 불면 날림먼지가 발생하고, 단속 공무원이 현장에 없을 때는 공사 업체에서 날림먼지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공사장 등에서 발생하는 날림먼지를 측정할 방법이 없어 발생원을 관리하는 데 한계도 많았다.

현재 날림먼지의 무게를 측정하는 고용량 공기시료 채취법이 있으나, 비싼 장비를 다루기가 힘들어 날림먼지 발생 사업장에 적용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 방법을 적용하려면 사업장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위치와 불어가는 위치 등 총 4곳에 측정 장비를 설치해야 하고, 1시간 이상의 시료채취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정민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은 “공사 현장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자주 바뀌고, 날림 먼지를 측정하려면 2000만 원대의 비싼 장비를 4개나 설치해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측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날림먼지 측정 

날림먼지 측정 프로그램 시연 모습. 배경 선택 후 불투명도 값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날림먼지 측정 프로그램 시연 모습. 배경 선택 후 불투명도 값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하지만, 최근 새로운 날림먼지 측정법이 개발되면서 이르면 내년부터 공사장 단속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날림먼지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광학적 측정기법을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최근 개발함에 따라, 올해 상반기 중으로 날림먼지 측정 공정시험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개발한 측정기법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활용해 날림먼지의 발생 정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스마트폰, 카메라 등으로 촬영한 사진 또는 동영상만 있으면, 측정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날림먼지 발생에 따른 불투명도(0~100%)를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정량적으로 산출한다.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활용하는 경우, 사업장 밖에서도 날림먼지 발생 정도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박 연구관은 “새로운 측정법은 기존과 달리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비산먼지까지 잡아낼 수 있고, 공사현장의 CCTV를 분석해 비산먼지의 농도를 파악할 수 있다”며 “공사 업체 입장에서는 훨씬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이번에 마련한 측정법을 올해 상반기에 대기오염공정시험기준으로 고시할 계획이다.
또, 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 상 날림먼지 발생 사업장 관리 기준에 날림먼지 불투명도 관리기준을 추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김법정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관은 “이번 광학적 날림먼지 불투명도 측정기법 개발로 날림먼지 관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며 “관련 공정시험기준 및 관리기준을 차질없이 마련해 날림먼지로 인한 미세먼지 발생을 획기적으로 저감하겠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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