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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첫 공개 언급 ‘완전한 비핵화’ 가능할까…원자핵 전문가에 물어보니

중앙일보

입력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북한이 각종회담, 특히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밝히거나 합의문에 서명한 적은 있지만 자신의 육성으로 '비핵화'를 언급한 건 처음이다. 남·북·미 정상들의 말의 성찬(盛饌)에 오르고 있는 '완전한 비핵화'는 실제 어느 정도 가능한 목표일까.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은 십수 년의 고립 속에서 스스로 핵무기를 완성한 나라"라며 "핵을 자체 개발한 나라가 스스로 이를 전량 폐기한 사례는 없는 만큼 북한의 비핵화 과정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을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핵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살펴봤다.

 어제(Yesterday)ㆍ오늘(Today)ㆍ내일(Tomorrow) 핵을 없애라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먼저 비핵화에서 어떤 것을 제거할지 확정해야 한다"며 "완전한 비핵화란 북한의 과거ㆍ현재ㆍ미래 핵으로 나눠 각각의 요소를 제거하거나 폐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신고 리스트 작성 및 검증 프로토콜 마련에만 2~3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 때 남측을 통해 비핵화의 기간으로 1년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가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가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과거의 핵에 해당하는 영변 핵단지 시설은 5MWe 원자로,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 60년대 연구용 구(舊) RT-2000 원자로, 핵무기 제조공장, 폐기물 처리ㆍ보관시설 등 수십 동의 건물이 몰려있다. 북한이 2000년대 초중반 부터 전환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HEU) 시설, 위성정보로 파악된 전국 각지의 핵 실험·연구 건물도 해체 및 폐쇄 대상이 된다.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이와 관련해 “미국의 과거 핵 개발 과정을 볼 때 북한이 실패한 핵 실험장 터널에도 잔존물이 남아 있을 수 있어 핵실험 터널들에 남은 물질들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며 들어 보이고 있다.[유튜브 영상 촬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며 들어 보이고 있다.[유튜브 영상 촬영]

 완성된 핵무기, 즉 핵탄두 처리는 비교적 빠를 수 있다. 옛 소련 연방의 사례처럼 핵무기를 북한 영토에서 해외로 반출하면 되기 떄문이다. 하지만 운반 과정에서 위험 부담이 따른다. 소련의 경우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라루스 등에 배치됐던 핵무기를 본토로 옮겨오는데 열차를 활용했다. 북한의 경우 항공 루트로 옮기기엔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에 해상 운송을 하는 방법이 고려되고 있다.
 '미래의 핵' 위협을 없애는 것은 또다른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이 교수는 “원자로는 해체하고 핵탄두는 빼낼 수 있지만 연구ㆍ개발에 참여한 북한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남아 있다. 언제든 기술을 전파하거나 되살릴 수 있다는 의미”라며 "이 단계까지 관리하는 것을 비핵화 과정이라고 봐야한다"고 조언했다.

 北 본딴 영국 콜더홀 원전 해체만 125년…돈은 누가 내나

 핵무기 생산을 중단시키려면 원료 물질(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원자로를 폐쇄·해체해야 하는데 이 작업이 만만치 않다. 장문희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는 "가장 핵심적이고 까다로운 과정이 제염(방사성 물질을 약화시키는 것) 단계"라며 "구조물을 뜯어내는 작업 등을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에 로봇ㆍ원격 장비를 동원한다. 이를 위한 설계까지 포함하면 제염 작업에만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늘려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공개한 지난 6일 촬영된 위성영상. 북한 영변 핵단지 재처리시설 화력발전소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공개한 지난 6일 촬영된 위성영상. 북한 영변 핵단지 재처리시설 화력발전소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북한의 영변 5MWe 원자로의 모델인 영국의 콜더홀(흑연감속로, 50MWe급) 원자로는 2003년 가동을 중단한 이래 15년 넘게 해체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경미한 방사성 물질을 자연 소멸시키는 지연 해체 방식을 택해 해체가 완료되는 시점을 125년 이후로 잡았다. 2017년 가동 중단한 한국의 고리1호기 원전은 본격 해체를 위한 설계에만 3년을 계획했다. 이후 사용후핵연료 냉각기간 5∼6년, 원자로 구조물 원격 절단ㆍ제염에 6년 이상, 방사성 폐기물 처분하고 부지 복원처리 하는데 2년 이상을 잡고 있다. 장 박사는 "북한의 원자로는 출력 용량은 적지만 가동 기간(1986년 도입)이 긴 만큼 해체 기간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북한의 협조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1일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돈 문제도 만만치 않다. 콜더홀 원자로 해체비용은 2006년 기준 10억 5700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1조 8000억원) 정도다. 원자로 하나를 해체하는데 조 단위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북한의 비핵화 비용은 간접ㆍ직접 비용을 포함해 수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91년 '넌-루가 법' 입법을 통해 구 소련 연방의 비핵화 비용을 댔던 건 잘 알려진 사례다. 미국은 90년대에는 매년 10억 달러를 지원했고 현재까지 연간 3억 달러 가량을 쓰고 있다. 미국이 공을 들인 건 ‘미래 핵’의 제거였다고 한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핵탄두는 빼낼 수 있지만, 핵시설과 핵물질, 무엇보다 기술을 보유한 핵 과학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이었다”며 “과학자들이 경제난을 이유로 핵기술을 전파하거나 복원하지 않도록 지정된 시설에서 평화적인 연구활동을 하는 비용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핵기술자들의 재취업 문제가 장기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

 '완전한 비핵화' 동상이몽 깨는 게 첫번째 과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는 모습.[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는 모습.[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정치 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반세기가 걸릴 수 있는 비핵화의 시간 및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상들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여전히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다만 전 전 원장은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미국의 자신들에 대한 핵 위협 제거 및 주한미군 철수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 한ㆍ미는 북한 핵 위협의 제거로 이해하고 있다"며 "이런 인식의 차이를 일치시키는 과정이 첫번째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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