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에 칼 휘둘러도...정신질환자 관리 못하는 정신건강복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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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진 [연합뉴스]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진 [연합뉴스]

“안돼요, 안돼요. 아줌마. 하지 마세요!”

지난 2017년 6월 5일 경기 과천시의 한 마을버스 정류장. 버스에서 내리는 초등학생 A(당시 12세) 군에게 30대 여성 B씨가 칼을 쥔 채 달려들었다. A군은 혼자 마을버스를 타고 동네 도서관에 빌린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정류장 기둥 뒤에 숨어있던 B씨가 나타나 A군에게 칼을 휘둘렀다. A군은 “안돼요” 애원하며 손에 들고 있던 책으로 자신에게 날아드는 칼날을 간신히 막았다. 필사적으로 도망친 끝에 A군은 목숨을 건졌고, A군 엄마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B씨를 붙잡았다.

B씨는 조현병 환자로 정신과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퇴원해 집에 머무는 상태였다. 퇴원과 동시에 치료를 중단했고, 약을 끊으면서 환청ㆍ환각 증세가 심각해졌다. 그는 사건 당일에도 ‘누군가 너를 해치려 한다’는 환청을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A군과 가족들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A군의 어머니는 “언제라도 B씨가 다시 동네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걱정을 했다”라며 “우리 아이는 다치지 않아 다행이지만 언제라도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라고 털어놨다.

지난 2017년 5월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입원 절차는 까다롭게, 퇴원은 쉽게 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퇴원 후 환자 관리가 제대로 안 돼 강력 범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숨지게 한 환자도 퇴원 뒤 치료가 중단된 상태였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조현병ㆍ조울증 정신질환 범죄자 수는 9027명으로 2013년(5858명) 대비 큰 폭으로 늘었다. 이들의 재범률은 66.3%(2017년)로 전체 범죄자 재범률(46.7%)보다20%포인트가량 높다.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제 52조는 본인의 동의를 받거나 의사능력이 미흡하면 보호자 동의를 받아 퇴원 사실을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보건소에 통보하도록 규정한다. 지역사회로 돌아오는 환자를 꾸준히 관리하면서 치료가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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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약 복용 등 치료 여부를 체크할 수 있어서다. 정신건강 전문간호사나 사회복지사가 1대1로 환자를 상담한다. 재활프로그램이나 데이케어 센터로 연계하고, 급격한 상태 변화가 생기면 이를 감지하고 보호 조치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제대로 치료받는 환자 대부분은 폭력성을 보이지 않는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료를 꾸준히 받는 대부분의 정신과 환자는 위험하지 않다. 문제는 치료를 중단한 급성기 환자들이다. 그런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본인이나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지역사회에선 알 수 없다. 퇴원 사실을 통보할 수 없다. B씨가 그런 사례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사건 이전에 그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본인과 함께 사는 어머니 모두 환자 정보 이관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에 붙잡힌 B씨는 응급입원(3일)을 거쳐, 행정입원(지자체장에 의한 입원)으로 현재도 병원에 있다. 언젠가 B씨가 병원 문을 나서게 될 때, 본인ㆍ가족이 원치 않는다면 그는 관리망 밖에 놓이게 된다. 또다시 치료 사각지대로 숨어버릴 수 있다.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자ㆍ타해 우려가 높은 환자나, 범죄 경력이 있는 환자의 경우 본인 동의가 없어도 지역 센터에 퇴원 사실이 통보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라며 “환자 인권은 최대한 보호하되 환자 본인의 치료 기회를 보장하고, 지역사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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