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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연구비를 늘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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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달 말 많은 대학 교수의 마음을 꽁꽁 묶어 뒀던 2차 두뇌한국(BK)21 사업 선정 결과가 발표됐다. 선정된 팀들은 일단 정부가 설치한 '선택과 집중'의 터널을 통과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정부 연구개발 사업예산은 7조8000억원, 올해는 9조원으로 세계 8위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좋은 성과로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가슴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그 걱정의 한가운데 '선택과 집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에서 빠지지 않고 따라다닌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이다. '선택과 집중'은 경우에 따라선 강대국 틈 속에서 생존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기간산업과 같이 보호받아야할 학문인 기초과학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의미를 달리해야 한다. 기초과학에서 연구되는 이론은 첨단기술 분야와 달리 어느 곳에 쓰일 것이란 예상이나 목적을 가지고 연구되는 게 아니다. '선택'이라는 용어가 예상과 목적을 전제로 한다고 할 때 기초과학에서의 '선택'이란 용어는 의미를 잃게 된다. 이 분야에서 '선택과 집중'의 바른 의미는 넓고 푸른 잔디밭을 만드는 심정으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게 되어야 한다. 2004년 과학기술지표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과학논문인용지수(SCI) 등재 논문집에 게재된 논문총수는 세계 13위였다. 그러나 논문의 질적인 수준을 말해 주는 편당 피인용 횟수 순위는 29위에 그쳤다. 질적인 면에선 10년 전과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뜻이다. 기초과학 발전의 기본 단계인 '육성과 지원'을 외면하고 성급하게 '선택과 집중'을 택한 결과라면 지금이라도 궤도수정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은 학문연구의 도약단계에서 필수적인 '경쟁과 협력의 싹'을 잘라버리는 칼날이 되곤 한다. 어렵게 형성된 경쟁의 틀을 무력화한 1차 BK21 사업이 좋은 본보기다.

한편 개인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초과학 국가 연구비 지원 사업의 선정과제 수는 2004년 200건 정도였다. 1만 명이 넘는 이 분야 연구자를 감안하면 개인 연구자들이 놓여있는 연구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짐작하게 한다. 기초과학 육성은 연구환경 개선 등을 통해 개인 연구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 분야의 핵심 아이디어는 우수한 개인 연구자나 다수 연구자의 토론 속에서 창출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연구개발 사업은 우수한 개인 연구자를 양성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으로 대규모 연구 집단이나 대형 연구비 사업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들 대형 연구개발 사업의 요소는 우수한 개인 연구자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집단적인 대규모 연구비를 지원하기에 앞서 소액 개인 연구비를 대폭 확충하는 것이 우리나라 기초과학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채영도 성균관대 교수·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