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체 나 어떻게 잡았어요?" 치밀했던 사무실 털이범의 허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저 어떻게 잡은 거예요. 도대체? 휴대폰도 안 썼는데…."

지난 11일, 서울 신논현역 부근에서 방배경찰서 형사들에게 붙잡힌 이 모(35) 씨는 경찰차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신논현역 근처 왕복 8차선 도로에 뛰어들고 100m나 더 달려 붙잡힌 그였다. 이 씨는 지난 5일 새벽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빌딩의 사무실 2개와 주변 건물 사무실 2개에 잇달아 침입해 금품을 훔쳤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 씨는 같은 수법으로 10월 말부터 서울, 경기 평택, 전주 등을 돌아다니며 빈 사무실을 털었다. 새벽 시간대 폐쇄회로(CC)TV가 없는 사무실만 골랐다. 사무실 문을 노루발문뽑이(일명 빠루)로 뜯고 노트북, 현금, 상품권 등 4천 5백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밝혀진 것만 34차례다.

'흰 패딩' vs' 검은 패딩'…마스크 벗은 순간 노린 형사

지난 5일 새벽 이 씨가 범행을 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 검정 패딩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있다.

지난 5일 새벽 이 씨가 범행을 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 검정 패딩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있다.

범행 후 도주할 때 이 씨는 흰색 패딩으로 옷을 갈아 입어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범행 후 도주할 때 이 씨는 흰색 패딩으로 옷을 갈아 입어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검거 직후 이 씨가 '어떻게 붙잡혔는지'를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스스로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범행 전·후로 근처 모텔에서 옷을 바꿔입어 CCTV 추적을 따돌렸다. 범행 전날 저녁, 모텔에 투숙할 때는 흰 패딩을 입었다. 범행 날(지난 5일) 자정쯤엔 까만 패딩으로 갈아입고 빠루가 든 배낭을 들고 모텔을 나왔다. 사무실 4곳을 돌고 사무실에서 여행용 가방까지 훔쳐 금품을 실어 나른 그는 다시 모텔로 들어왔다. 날이 밝자 이 씨는 다시 흰색 패딩으로 갈아입고 모텔을 나섰다.

CCTV를 추적한 경찰은 모텔 주인에게 "까만 패딩을 입고 여행용 가방을 끈 손님이 오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모텔 주인은 "그런 손님 없다"고 답했다. 새벽 시간대 카운터에 없었던 모텔 주인은 그를 '흰 패딩을 입고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간 손님'으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이 씨가 늘 마스크를 끼고 다닌 것도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렵게 했다. 경찰은 이 씨가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는 순간을 노렸다. 범행 뒤 한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 것을 확인했고, 식당 안 CCTV에 칼국수를 먹는 이 씨의 얼굴이 잡혔다.

비슷한 수법으로 14년 복역…"생활이 어려워서"

이 씨는 같은 수법으로 이미 5차례 14년간 교도소를 다녀왔다. 이번 범행을 시작하기 한 달 전에도 교도소에 있었다. 4년 만기출소 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원룸을 얻은 그는 출소 한 달 만에 다시 빈 사무실을 털었다. 이 씨는 범행 동기를 묻자 "생활고 때문에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훔친 현금 등도 생활비로 써버렸다"고 했다.
방배경찰서 관계자는 "이 씨는 20대 초반, 어쩌면 더 어렸을 때부터 교도소를 다녔을지도 모른다"며 "만기 출소해서 한 달 만에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이번에 복역하더라도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지난 24일 이씨를 검찰에 넘겼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