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받았지만 압박은 없었다?…“재신임 차원 일괄사퇴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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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남 전 의원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환경부 산하기관 의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용남 전 의원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환경부 산하기관 의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공공기관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문건에 대해 환경부가 “산하기관장과 주요 임원을 대상으로 일괄 사퇴 요구가 있었던 것은 맞다”고 27일 밝혔다.

올해 초 환경부 기획조정실에 근무했던 A씨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장관 임명 등이 늦어지면서 지난해 말부터 기관장 교체 시기를 앞두고 산하기관 주요 인사를 대상으로 사표를 받았다”고 말했다. 문건에 나오는 인사들을 대상으로 실제 사표를 내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A씨는 다만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재신임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라며 “해당 인사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 뒤에 문제가 없으면 그대로 돌려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이 문건이 문재인 정부가 부처를 동원해 자기 쪽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려고 작성한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문건을 보면 대부분 임기가 얼마 안 남거나 이미 끝난 인사들이 많고, 한 인사는 사퇴 이후 기관장 공모에도 지원했다”며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리하게 사퇴를 강요했다는 건 그야말로 소설”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실제로 문건에 등장한 인사 중 일부는 당시 환경부의 사퇴 압박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문건에 등장한 전직 한국환경공단 임원은 “1월에 사표를 쓸 것인지를 놓고 내부 회의가 열렸고, 나는 일정상 당장 사표를 내기는 어렵다고 했다”며 “그러자 두 달 뒤에 환경부 감사관실에서 업무추진비를 봐야겠다면서 감사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3건 중 1건만 윗선에 보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19년 환경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19년 환경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초 환경부는 문건 작성 자체를 부인하다 이날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된 다음에야 작성 사실을 시인하는 자료를 배포했다. 김동진 환경부 대변인은 “추가 확인 결과 다른 내용이 나와 늦게 자료를 배포했다”고 해명했다.

환경부는 문건 작성 배경에 대해 “당시 감사관이 김태우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요청을 받고 부하 직원에게 작성을 지시했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뒤 김 수사관이 환경부를 방문했을 때 그 문건을 포함해 3건의 자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당시 제공한 자료는 ▶대구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관련 직무 감찰 결과 ▶환경부 출신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의 동향 등 3건이다.

한국당이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한 문건은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의 동향’을 지칭하는 것이다. 한국당은 블랙리스트 작성 및 보고 과정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이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환경부 감사관실에 근무했던 B씨는 “‘대구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관련 직무 감찰 결과’ 1건만 문건을 만들기 몇 달 전에 이미 윗선(장·차관)에 보고가 됐고, 나머지 2건은 정보 차원에서 김 수사관에게만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자료를 받은 김 수사관은 환경부 관련해서 사정이나 감찰 활동을 잘해달라는 얘기만 하고 돌아갔고, 이후 연락은 없었다”고 말했다.

문건 내용이 직무 범위를 벗어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감찰 업무를 하다 보면 주워듣는 게 많다 보니 그런 차원에서 정리해서 준 것인데 검토가 미흡했던 거 같다”고 인정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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