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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학생 주장 강경… 사태 악화 일로|무기 휴업 고려대 사태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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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적인 총장 선출」과 「등록금 동결」을 둘러싸고 학교와 학생·직원간에 마찰을 빚으며 두달이 넘게 진통을 거듭해 온 고대 사태는 15일 학교측이 무기한 휴업이란 「극약 처방」을 내림으로써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학교측은 1학기 개강 이후 50일이 넘도록 총장실 등 본관 점거 농성과 수업 거부가 계속돼 학교 기능이 마비된 데다 최근엔 이준범 총장이 입시 부정 혐의로 사직 당국에 고발되는 등 학내 사태가 학외로까지 비화되는 상황에서 최후의 선택인 무기한 휴업을 결정한 것으로 보이나 학생들은 이 같은 조치에 반발, 계속적인 투쟁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총장의 퇴진 요구와 관련해 학내 사태가 감정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데다 교수평의원회도 총장 선출 후유증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일단 휴업 조치를 통해 냉각기간을 갖고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학교측의 의도는 학생들의 강경 대응으로 자칫 공권력 개입이란 최악의 사대로 발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더 나아가 학교측의 전격적인 휴업 결정에 대해 적지 않은 교수들조차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양상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고대 사대는 지난해 말부터 『총장 선출은 교수들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교수측과 『총장 선출 과정에 총학생회·직원노조 등 나머지 학내 5개 자치 단체도 참여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주장이 팽팽히 대립되면서 비롯됐다.
더욱이 지난달 4일 학생들과 몸싸움 끝에 교수들이 투표를 강행, 결국 이 총장이 연임되면서부터는 학교측과 학생들의 입장은 감정 대립으로까지 발전, 교수들의 휴·폐강, 학생들의 수업 거부 등으로 확산되며 불신의 벽이 높아져 갔다.
학생들은 당초 이 총장이 총장 후보 선거에 출마할 때부터 이 총장이 ▲교수 자녀 등의 부정 입학 ▲강제 징집자 진혼비 철거 ▲5공 인사의 특수 대학원 입학 특혜 등 5공 시절 학내 비리와 부정의 장본인이라고 주장, 출마를 반대했었다.
그러나 이 총장이 선거에 출마, 연임되자 학생들은 학내 사태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재단과 유착 관계를 맺어 온 이 총장에게 있다고 보고 이 총장 퇴진의 방편으로 부정 입학 등 학내 비리를 들고 나왔다.
학교측은 이에 대해 『부정 입학은 학생들의 주장일 뿐 사실 무근』이라는 공식 입장을 고수하며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아 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4일 최장집 교수(정외과) 등 11명의 교수가 학내 사태와 관련, 호소문을 내고 『학생들의 부정 입학 주장을 포함, 학내 문제에 관해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 진지하게 논의할 것』을 요구했으며 28일에는 김일수 교수(법학과) 등 교수 11명이 『학내 부정과 비리의 1차적 책임자는 이 총장』이라고 주장, 총장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학생들은 지난달 29일 교수·직원·학생 참여의 「대학발전위원회」 구성 등이 담긴 긴급교무위원회의 사태 수습안을 거부한 채 이 총장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무기한 수업 거부를 결의, 학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또 이철 의원(무소속) 등을 찾아가 부정 입학 자료를 전달하고 국회 차원에서의 입시 부정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고 지난달 30일 국회 문공위에서 정원식 문교부장관은 『고대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이어 12일 국회와 문교부에 또 다시 부정 입학 자료를 보내 감사를 요구하는 한편 14일에는 검찰에 이 총장과 안창일 전 교무처장을 『86년부터 89년까지 4년 동안 교수 자녀 등 70명을 부정 입학시켰다』고 주장, 형사 고발했다.
학생들은 이밖에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김상만 재단이사장 자택 앞 농성, 이 총장 자택 침입 농성과 함께 전화교환실·전산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여 왔다.
한편 학교측과 교수들은 학생들의 이 총장 사퇴 요구에 대해 『총장 사퇴로 사태가 수습되는 것은 아니며 첫 직선제 총장이 학생들의 주장에 밀려 퇴진하는 것은 교권 수호의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제, 특별 담화문을 통해 『학내 사태가 원만히 수습되고 총장 선출 제도가 정착되는 대로 총장직을 걸고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며 이 총장의 조건부 사퇴를 시사하고 있어 무기한 휴업 조치에도 불구, 이 총장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과의 대립과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학생들은 고대 문제가 단순한 학내 차원을 떠나 전체 대학의 학원 민주화와 자주화의 시험 무대라는 입장을 강력히 고수해 온 이상 공권력이 투입된다 해도 종전 주장을 굽힐 의사가 없다고 밝혀 사태 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생들은 학교측의 휴업 조치에 반발, 지금껏 미뤄 온 「총장직 무정지가 처분 신청」을 이번 주초 법원에 낼 계획인데다 임시 휴업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가세로 학내 사태는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김기평 기자>

<「고대 사태」 주요 일지>
▲89년 1월24일 「학원 민주 쟁취를 위한 4개 단체 특별위원회」 구성
▲2월1일 4개 단체 소속 5백여명, 교수평의원회 임시 총회장 검거로 총장 후보 선출안 마련 무산
▲2월20일 총학생회 집행부 총장실 점거 농성
▲2월21일 교수협의회 총장 후보 선출안 우편 투표로 확정
▲2월23일 대학원 총학생회 재단 이사장실 점거 농성
▲3월4일 교수협의회 총장 후보 선출 투표 강행, 학생들 저지로 1차 투표만 실시
▲3월7일 교수협의회 2차 투표 강행으로 이준범·홍일식 교수 등 후보 2인 재단에 추천 총학생회 시한부 수업 거부 결의
▲3월9일 김경근 교수(신방과) 「비판 이론」 등 2개 강좌 폐강
▲3월10일 재단 이사회 이 총장 선임
▲3월13일 4개 단체 부정 입학 의혹 명단 공개
▲3월14일 최장집 교수 등 교수 11명 학내 사태 관련 호소문 발표
▲3월28일 김일수 교수 등 교수 11명 이 총장 퇴진 촉구 성명 발표
▲3월29일 총학생회 무기한 수업 거부 결의
▲4월3일 이 총장 학내 사태 관련 경고문 발표
▲4월4일 교수협의 회장 홍재우 교수에서 최동희 교수로 교체
▲4월14일 4개 단체 이 총장·안창일 전 교무처장 검찰에 고발
▲4월15일 교무위원회 임시 휴업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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