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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주포 어나이…뽑을 땐 6명 중 6등, 때릴 땐 6명 중 1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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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25일 도로공사전에서 상대 블로킹을 피해 스파이크를 꽂는 어나이(왼쪽). [연합뉴스]

지난 25일 도로공사전에서 상대 블로킹을 피해 스파이크를 꽂는 어나이(왼쪽). [연합뉴스]

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 어도나 어나이(23·미국·1m88㎝)는 지난 5월 이탈리아 몬차에서 열린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막차를 탔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시즌 준우승팀이었지만 지명권 순서 추첨에서 6개 팀 중 마지막인 6번을 뽑았다. 1순위 팀부터 차례로 외국인 선수를 호명했다. 다섯 팀이 모두 결정하고 IBK기업은행만 남았다.

여자배구 득점 1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마지막 순위로 뽑혀 #실력 일취월장, 득점 1위 달려 #향수병 우려, 가족 교대로 초청

염두에 뒀던 선수가 다른 팀에 뽑히자 이정철 감독은 고민할 시간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어나이를 선택했다. 모험이었다. 어나이는 미국 유타대 여자배구팀 주 공격수였지만, 프로에선 검증되지 않은 원석이었다. 이 감독은 “한국에서 프로 생활을 처음 시작해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어 잘 가르쳐 보겠다”고 말했다.

한국행 막차를 탄 어나이는 현재 여자배구 득점 1위다. 어나이는 25일 화성에서 열린 도로공사 전에서 양 팀 최다인 25득점으로 세트스코어 3-0의 대승을 이끌었다. 승점 32점(11승5패)의 IBK기업은행은 흥국생명(10승5패·승점 31점)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어나이는 여자배구 선수 중 유일하게 400점대 득점(443점)을 기록 중이다. IBK기업은행의 모험은 그야말로 ‘고위험-고수익’이 됐다.

어나이는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은 훈련량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나이는 “난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떤 훈련도 잘해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예상과 현실은 달랐다. 이정철 감독의 호통과 강도 높은 훈련에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다. “집에 가겠다”며 짐도 몇 차례 쌌다. 이 감독조차 “그간 경험한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다루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 감독 손을 거치면서 원석은 보석으로 바뀌어 갔다.

이정철 감독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제가 도입된 2015년 이후 매 시즌 ‘미다스의 손’을 뽐냈다. 2015~16시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리즈 맥마혼(25·미국), 2016~17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끈 뒤 챔피언결정전 MVP로 뽑힌 매디슨 리쉘(25·미국)이 이 감독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 어나이가 그 뒤를 이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정철 감독이 외국인 선수와 관련해 가장 걱정하는 건 향수병이다. 기술이야 훈련을 통해 가르치면 되지만, 향수병은 집에 돌아가야 고칠 수 있어서다. 그래서 구단과 상의해 어나이의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한국으로 불렀다. 시즌 개막 전에는 남자친구가, 시즌 초에는 어머니와 고모네 가족이, 최근에는 아버지가 한국을 찾아 어나이를 응원했다.

어나이는 “훈련이 정말 힘들다. 그래도 그 시간 덕분에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정철 감독과도 사이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이 감독 말이 대개 옳았다”고 말했다. 맨 마지막 한장 남은 한국행 티켓을 잡았던 어나이는 “한국에서 꼭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반년, 어나이는 코리언 드림의 완성을 위해 순항 중이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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