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목사 마중 "두갈레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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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3일 낮12시. 서울김포공항 국제선 구청사는 짙은 감색, 깔끔한 양복차림의 정·사복경찰과 공안관계기관원 등 5천여명의 번득이는 눈빛으로 긴장감에 터질듯했다.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정부의 허가도 받지 않고 북한을 방문, 대부분의 기성세대가「철천지원수」로 배워왔던 김일성과 면담까지 한 문익환 목사가 입국하기만을 기다리는 순간.
문목사의 노모 김신묵씨(94)와 부인 박용길 장로, 장남 호근씨 등 가족일행은『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기대속에 서있다 문목사가 청사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연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얼굴도 한번 못 보게 하는 당국의 편협한 태도에 또 한번 분노를 느낀다』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문목사의 방북을 지지한다』『지지한다, 지지한다』
청사내의 긴장된 분위기를 깨고 문목사 마중을 나왔던 재야인사 등이 갑자기 플래카드를 떨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야! 빨갱이××들아』『이게 무슨 짓거리야. 좋으면 북한으로 가버려』
뒤이어 경찰 등 공안관계자들 쪽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들.
10여초만에 플래카드는 경찰의 손에 넘어갔고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은 사복 경찰에 끌려 청사밖으로 연행됐다.
그러나 양쪽의 목소리는 이어졌다.『독재정권의 앞잡이들아! 너희는 자유도 민주도 모르느냐』『너희만 민주주의냐. 우리도 민주주의를 위해 이러는 것이야』
결국 양측의 시비는 시비를 가리지 못한채 양측 대다수의 만류로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남은 것은 끼리끼리 모여 각각「빨갱이」와「독재」를 성토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먼길을 다녀오는 반가운 사람을 맞이하는 환영객들로 언제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청사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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