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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띄우고 아파트 지붕에 잠복, 난개발 잡는 목사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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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최병성 목사가 아파트 지붕에서 촬영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최병성 목사가 아파트 지붕에서 촬영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양지바른 산기슭에는 크고 작은 빌라와 주택이 들어서 있었고, 나지막한 야산과 숲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학교 옆 화학연구소 제동 건 최병성씨 #주민들 “유해폐수배출시설” 반발 #연구소 “설계 바꿔 문제 없다” 주장 #최 목사, 공사장 작업자 도면 촬영 #원래 설계도와 같다는 것 밝혀내 #건축허가 취소 관련 소송 1심 승소

하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과 달랐다. 주택가 골목길은 가팔랐고, 꼬불꼬불해 자동차가 마주 지나기 어려웠다. 마을 뒤 야산을 오르자 나무 사이로 건물이 보였다. 능선 반대편에도 주택 수백 채가 들어서 있었다. 능선 위 숲은 등산로를 중심으로 폭이 겨우 30여m에 불과했다.

동행한 최병성(55) 목사는 “용인 지역은 그린벨트로 묶이지도 않았고, 경사도 규제가 크게 완화된 바람에 난개발이 심하다”고 말했다.

용인시는 2015년 5월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했다. 기흥구의 경우 경사도 17.5도 이하에서만 개발행위가 가능했는데, 21도까지 개발이 가능해졌다. 용인시의 개발 행위 허가 면적은 2014년 224만㎡에서 2017년 409만㎡로 급증했다.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용인 난개발을 고발해온 그는 직접 찍은 드론(무인기)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은 난개발 실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최 목사가 용인 난개발 문제 해결에 뛰어든 것은 4년 전 안양에서 용인 기흥구 지곡동으로 이사하면서부터다. 그가 이사한 아파트와 지곡초등학교 바로 옆에 콘크리트 혼화제(콘크리트에 첨가하는 화학물질) 연구소가 들어서게 됐고, 주민들은 유해물질이 든 폐수가 나온다며 반발했다.

최 목사가 드론으로 촬영한 콘크리트 혼화제 연구소 공사 현장과 설계도. [강찬수 기자]

최 목사가 드론으로 촬영한 콘크리트 혼화제 연구소 공사 현장과 설계도. [강찬수 기자]

2014년 10월 연구소 건축을 허가했던 용인시는 주민 반발이 심해지자 2016년 4월 허가를 취소했다. 업체(실크로드시엔티) 측에서는 행정심판을 청구해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용인시의 건축허가 취소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이번에는 주민들이 경기도 행정심판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지난 10월 말 수원지법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연구소에서 발생하는 폐수는 하루 0.1㎥ 이상으로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폐수배출시설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보전녹지·자연녹지에는 들어설 수 없는 시설이라는 것이다. 설계를 변경하고 실험실 규모를 줄여 폐수 배출이 거의 없다는 업체 측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같은 판결 배경에는 드론과 600㎜ 망원 카메라로 무장한 최 목사가 있었다. 그는 “연구소 공사장 위로 드론을 띄워 업체 측 주장과는 달리 수중 양생조 등이 원래 설계도대로 지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또 “지난봄 내내 19층 아파트 지붕 위에서 살다시피 하며 망원카메라로 공사장 작업자가 들고 있는 설계도를 촬영했는데, 당초 설계도와 동일했다”며 “드론과 망원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법정에서 하나하나 보여주며 재판부를 설득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체 측은 다시 항소했다. 업체 측 관계자는 “폐수가 거의 배출되지 않고 배출되는 것도 전량 다른 곳으로 옮겨 위탁 처리할 것이기 때문에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은 셈이다.

최 목사는 지난 8월부터 용인시 난개발 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난개발 특위는 내년 2월까지 ‘난개발 백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최 목사는 지난달 환경재단으로부터 ‘2018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에 선정돼 상을 받았다.

용인=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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