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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부모님이 전생에 나라 구한 것 같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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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정후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로 변신했다. 지난 23일 경기 성남시 야탑고에서 중·고교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야구를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했다. 2018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이정후는 ’실력이 부족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오종택 기자]

이정후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로 변신했다. 지난 23일 경기 성남시 야탑고에서 중·고교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야구를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했다. 2018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이정후는 ’실력이 부족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오종택 기자]

프로야구 히어로즈의 이정후(20)는 2018년을 최고의 해로 만들었다. 프로야구 2년 차를 맞아 대표팀에 처음으로 뽑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데 이어 연말엔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특히 올해는 손가락·종아리·어깨 등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를 대표할 만한 스타로 성장했다. 지난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이정후에게 기자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프로에 와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농담을 던졌더니 이정후는 “저희 부모님이 구하셨나 봅니다”라고 대답했다. 부모님이 잘 키워주셔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정후의 아버지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48) LG 트윈스 코치다.

2018년 최고의 한 해 보낸 이정후 #국가대표 뽑혀 아시안게임 금메달 #가을야구 이어 골든글러브상까지

올해 이정후는 109경기에 나와 타율 0.355(3위), 출루율 0.412(6위), 57타점, 81득점 등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이정후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를 만나 2018년을 보낸 소감을 들어봤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 한화와 넥센의 경기. 넥센 이정후가 9회말 1사에서 한화 김회성의 좌익수 앞 뜬공을 잡고 글로브에서 공을 꺼내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준플레이오프 2차전 한화와 넥센의 경기. 넥센 이정후가 9회말 1사에서 한화 김회성의 좌익수 앞 뜬공을 잡고 글로브에서 공을 꺼내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와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수퍼 캐치’를 하다가 어깨 부상을 입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 이후 어떻게 지냈나.
“지난달 7일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치료를 받고 있다. 그 와중에 충남 논산의 육군 훈련소에서 4주간 군사 훈련을 마치고 지난 14일 복귀했다. 어깨 재활 중이어서 훈련소에 가는 게 걱정이 됐다. 쉴 때는 철저하게 보조기를 착용하고 어깨를 고정해서 큰 이상은 없었다. 우리 팀의 (최)원태·(김)하성 형과 LG (오)지환 형 등과 함께 내무반 생활을 했다. 훈련소 생활이 쉽진 않았다. 여러 훈련 중 특히 ‘화생방 훈련’과 완전 군장을 하고 10㎞ 행군을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이정후는 여전히 훈련소에 있는 것 같았다. 구단 프런트 직원이 말을 붙이니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골든글러브 수상 소식을 훈련소에서 들었더라. 기분이 어땠나.
“그렇다. (김)하성 형이 처음 말해줬는데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소대장님이 따로 불러서 말씀해주셨다. 상을 탔다고 하셔서 ‘제가요?’라고 반문했다. 골든글러브상을 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직 부족한데 뽑아주셔서 감사하고, 내년에는 더 잘해서 당당하게 상을 받고 싶다.”
올해 손가락 부상으로 스프링 캠프에 참가하지 못했고, 시즌 중에도 여러 부위의 부상에 시달렸는데.
“부상으로 시작해서 부상으로 끝난 시즌이었다. 부상으로 시즌 중에 2군에 내려갔다 왔는데 2군 형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 저보다 열심히 절실하게 야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어깨 부상은 심각해 보였다.
“공을 잡는 순간 어깨가 빠졌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시즌을 마감했다는 것도 직감했다. 시즌 중에 왼쪽 어깨를 한 번 다친 적이 있어서 조심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방망이가 안 맞고 있어서 수비라도 잘하고 싶었다. 통증이 1~10중 10일 정도로 아팠다. 그래도 아웃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공을 보여줬다." 
어깨 정밀 검진을 받고 의사에게 결과를 직접 안 듣고 트레이너만 듣게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심리적 요인 때문이었다. 처음 어깨를 다쳤을 때는 크게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병원에서 결과를 듣고 나니까 통증이 확 느껴졌다. 아무래도 의사 선생님은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말해주다 보니까 걱정이 되고 몸을 사리게 됐다. 반면 트레이너 선생님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말씀한다. 그럼 멘털이 흔들리지 않는다. 앞으로도 굳이 의사 선생님에게 결과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
2년 차 징크스 없이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는데.
“올해 유독 방망이가 잘 맞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유격수를 보다 프로에 와서 외야수로 전향했는데 내가 봐도 수비가 많이 좋아졌다. 지난해에는 타구 판단이 어려웠는데 올해는 예측하고 달려갔다. 외야 수비 영상을 돌려보면서 연습을 많이 했다. 또 송지만 전 코치와 (임)병욱 형 도움이 정말 컸다. 송 코치님이 ‘실수해도 내가 책임진다’라고 하셔서 과감하게 할 수 있었다.”
4주 군사 훈련을 마치고 아버지 이종범(왼쪽)과 기념 사진을 찍은 이정후. [사진 좋은스포츠 SNS]

4주 군사 훈련을 마치고 아버지 이종범(왼쪽)과 기념 사진을 찍은 이정후. [사진 좋은스포츠 SNS]

이제 ‘이종범의 아들’이란 꼬리표를 뗀 것 같다. ‘이정후’ 이름 석 자를 많이 알고 있다.
“팬들이 내 이름 석 자를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이종범 아들’로 불렸다. 내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어서 프로에 빨리 왔다. 그런데 프로에 와서도 ‘이종범 아들’이란 소리를 자주 들어서 스트레스가 많았다. 운 좋게 잘 풀려서 이제 팬들도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야구선수 이정후’로 인정해주는 것 같다. 이제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스트레스가 없다.”
군대 문제가 해결됐다. 해외 무대 진출도 노리고 있나.
"아직 모르겠다. 아예 생각을 안 한다. 지금 가장 큰 소원은 왼쪽 어깨가 다 낫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경기에 나가고 싶다. 감사하게도 병역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제 야구만 잘하면 된다. 나중에 은퇴하면 팬들이 내가 언제 최고였는지 평가해 줄 테니 더욱 열심히 하겠다." 
가을야구를 경험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작년에는 포스트시즌을 안 치러서 어떤 느낌인지 몰랐다. 그런데 올해 가을야구를 하면서 ‘우리도 우승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우승이 목표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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