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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시인 임화가 화가 구본웅을 꼬드겨 봄나들이에 나섰다. 광나루로 가자는 구본웅의 제안을 물리치고 동대문에서 뚝섬을 왕복하는 경전의 낡은 전차를 탄다. 궤도 차가 동대문을 떠나 왕십리 역 못 미쳐 이르면 주변 개천가엔 우뚝 우뚝 언덕이 나타난다. 쓰레기 언덕이다.
그 언덕 위에 게딱지처럼 집들이 지어지고 동네를 이루고 있다. 개천 바닥엔 수십 명이 모여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양철 조각을 찾아내고 있다. 이 양철이 하루 70∼80전 벌이가 된다.
『여보 무얼 보러왔소?』 화가가 묻는다. 『아, 이 냄새 맡지 못하오?』『하하, 구린내 말이오?』『봄이란 시각에서만 오는 줄 아오?』『그럼 후각에서 시작하는 거요?』시인과 화가가 말다툼을 벌이다 서로를 마주보며 실소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51년 전에 쓴『경궤연선』이라는 수필이다.
현대식 쓰레기 매립장이 난지도에 세워진 건 11년 전 봄. 이젠 32m와 17m 높이의 거대한 2개의 쓰레기 산을 만든 채 내년이면 폐쇄된다. 난지도에만 들어오는 산업 폐기물과 하수 찌꺼기는 하루 평균 8백18t, 매일 8t트럭 1백대가 쏟아 붓는 양이다. 이 계산으로 치면 폐쇄 직전까지 32m의 산이 90m로 높아질 전망이다.
난지도를 떠나 김포 해안 쓰레기 매립지로 옮겨가기에 앞서 서울시는 폐쇄될 난지도에 골프장을 꾸밀까, 대단위 아파트를 세울까에 골몰하고 있다고 한다.
1백억원을 들여 설치한 쓰레기 처리 공장을 시험가동 몇 번으로 끝낸 채 새 쓰레기장으로 옮겨가면서, 산업 쓰레기의 유·무해를 가려낼 만한 장치도 없이 난지도 부근을 악취와 오염으로 덮인 형벌의 땅으로 버려놓은 채 수익성 올리기에만 급급하고 있는 인상이다.
적어도 새 매립장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보다 과학적이고 총체적인 서울의 쓰레기 처리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쓰레기 썩는 냄새로 시작되는 서울의 봄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몇 십개의 쓰레기 산이 더 생겨나야 개선의 기미가 보일지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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