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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한국판 토머스 페인의 『상식』을 기다리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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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호 33면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최근 바르톨로메오스 정교회 세계총대주교가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성 니콜라스 대성당 축성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환담했다. 가톨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정교회의 수장인 바르톨로메오스 세계총대주교는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남북통일은 선의(善意, good will)를 지닌 사람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목표다. 사익(私益)을 위해 통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같은 식구의 재결합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는 또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중에 남북이 통일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세계 정교회 수장 바르톨로메오스 #“사익 위해 통일 반대하는 사람 있어” #미국 독립 주장한 페인의 『상식』 #미온적 사람들 독립 지지자로 포섭 #통일 의구심 떨쳐낼 『상식』 나와야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는 통일이 ‘이익’이 아니라 ‘선악’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줬다. 자본주의 입장에서 통일은 아마도 이익의 문제다.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자유와 권리가 이익을 초월한 ‘무조건적’인 가치인 것처럼, 민족주의 입장에서는 통일이 ‘무조건적’인 가치다.

21세기도 민족주의의 세기다. 그래서 박항서 감독의 쾌거에 베트남과 한국이 열광한다. 또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은 불행하다. 그들은 몸을 의탁할 민족주의의 둥지가 없다.

세계화는 민족주의를 오히려 더 절실하게 만들었다. 세계 각국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세계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사이의 건강한 균형이다. 남북 분단 상황이 지속하면, 세계 속 우리의 처지는 항상 취약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예전만은 못하더라도 지금도 ‘우리의 소원’(1947, 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을 들으면 가슴이 뭉클하다. 하지만 통일은 이제 “행위의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행위 그것 자체가 선(善)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 수행이 요구되는 도덕적 명령”인 정언적명령(定言的命令)이라기 보다는, 손익 계산의 대상이다.

통일 비용과 손실을 따지는 논문을 쓰는 국내외 학자들처럼, 일반인도 개인적인 득실에 민감하다. ‘세금 폭탄’ 가능성을 우려한다. 하루하루가 힘든 분들에게 ‘통일 이후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는 정당한 의문이다. 통일의 기쁨은 잠시··· 통일 후 사는 게 지금보다 더 팍팍해진다면 나는 과연 통일에 찬성할 것인가.

언젠가부터 번영이나 도약보다는 상황이 더 나빠지는 일은 없는, 생존이 목표가 됐다. 현상유지와 안전·안정이 시대정신이다. 공무원·교사가 최고 인기 직업이다. 물론 현상유지도 굉장히 어렵다.

미국의 혁명과 독립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토머스 페인의 초상화. [미국 초상화 갤러리]

미국의 혁명과 독립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토머스 페인의 초상화. [미국 초상화 갤러리]

책은 상황에 민감하다. 출판가 베스트셀러들을 살펴보면, ‘당신은 잘못이 없다’ ‘지금 이대로도 당신은 충분히 훌륭하다’ ‘당신은 할 만큼 했다’ ‘괜찮다’는 메시지로 ‘오늘의 나’를 정당화하고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책들이 많다.

이러한 에토스(ethos)로 소위 제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혁명의 풍랑을 우리 민족이 헤쳐나갈 수 있을까.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안전·안정이 아니라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탕주의’다. ‘한탕주의’는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남북통일은 우리나라 민족주의·민주주의·자본주의 확장을 위한 좋은 ‘한탕주의’ 기회다.

기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대중·민중·국민·유권자를 사로잡는 텍스트가 필요하다. 토머스 페인의 『상식(Common Sense)』(1776)과 같은 책이 긴요하다. 우리는 한국판 『상식』을 기다린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인 미국 2대 대통령 존 애덤스(1735~1826년)는 “토머스 페인의 펜이 없었다면 워싱턴의 칼은 쓸모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식』이 없었다면, 미국은 지금도 영국의 일부이거나 훨씬 나중에 독립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한국판 『상식』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100년 후에도 분단 상태에 머물 수 있다.

『상식』이 출간된 당시 미국인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의지가 없었다. 『상식』은 미국이 단지 영국의 폭정에 맞서는 게 아니라 독립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식』의 주장은 당시만 해도 충격적이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이나 벤저민 프랭클린도 독립에 대해서 미온적이었다. 『상식』이 판세를 뒤집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이 『상식』을 읽었다. 문맹자들을 위해서는 낭독회가 개최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온 국민이 읽고 토론하는 『상식』이 나와 통일에 대한 모든 의구심을 털어내고 젊은이들이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희망찬 미래를 꿈꿔야 한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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