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돈 잘 갚는 사람이 무슨 잘못?…금융권, 서민금융 대책에 당혹

중앙일보

입력

“취지는 좋지만 누구 돈으로 하는 건가요.”

금융위원회가 21일 내놓은 ‘서민금융 지원체계 개편 방안’에 대한 은행권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정부는 사실상 한 푼도 내놓지 않는 대신 은행들에 모자란 돈을 걷겠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최종구(오른쪽) 금융위원장이 21일 오전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TF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최종구(오른쪽) 금융위원장이 21일 오전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TF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특히 ‘신용대출을 하는 만큼 출연금을 내라’는 금융위의 발상에 대해 은행권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성실하게 빚을 잘 갚는 사람들에게 돈을 거둬서 빚을 잘 못 갚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셈이란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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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는 각종 서민금융 대책을 내놓으면서 일반 예산에선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내년 예산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신 복권 구매자들에게서 모아들인 복권기금에서 2016년부터 해마다 1700억원가량을 ‘햇살론’ 사업에 출연했다. 문제는 복권기금 출연금마저 2020년까지 예정돼 있고 더는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위가 내놓은 계획은 개인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은행들이 모자란 돈을 책임지라는 것이다. 은행별 개인 신용대출 취급실적에 출연요율(기준요율±차등요율)을 곱해 출연금을 걷겠다는 구상이다.

예컨대 10조원의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에 0.1%의 출연요율을 적용하면 해마다 100억원씩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구체적인 요율을 얼마로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금융위는 은행별 가계신용대출의 건전성과 서민금융 지원실적 등을 평가해 그 결과를 차등화해 요율에 반영할 계획이다.

최준우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연간 3000억원 정도로 금융권에 과도한 부담이 가지 않는 합리적 범위 내에서 출연금을 결정할 것”이라며 “예산 지원에 대해선 해당 부처와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선 규제산업의 특성상 공개적으로 반발은 못 하지만당혹스러운 속내를 내비쳤다. 각종 규제로 압박을 받는 와중에 추가 부담까지 지우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개인 신용대출에 서민금융 출연금을 강요하면 은행으로선 대출 비용이 올라가는 셈”이라며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대출 고객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민금융 지원도 좋지만 성실한 고객들이 상실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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