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노력 많이 하면 대출금리 깎아준다고?…금융위, 서민금융 대책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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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출창구 [연합뉴스]

은행 대출창구 [연합뉴스]

신용도가 매우 낮아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긴급 자금을 빌려주는 정책 금융상품이 내년 중 출시된다.

대출심사는 단순히 빚을 갚을 능력뿐 아니라 자금의 용도와 상환 계획, 상환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보기로 했다. 하지만 대출 창구에서 담당 직원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되기 쉬운 만큼 지원의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위원회는 21일 최종구 위원장 주재로 서민금융 지원체계 개편 TF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서민금융 지원체계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금융위는 고금리 대부업체를 이용하기 전의 저신용자(7~10등급)에겐 ‘긴급 생계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미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고금리 대출을 먼저 갚을 수 있도록 ‘대환자금’을 빌려준다.

최종구(오른쪽) 금융위원장이 21일 오전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TF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최종구(오른쪽) 금융위원장이 21일 오전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TF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출금리는 연 10% 중후반으로 대부업체 최고 금리(연 24%)보다는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성실하게 빚을 갚는 사람들에겐 매년 1~2%포인트씩 대출 금리를 깎아준다. 연간 지원 규모는 1조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금융업계에선 비판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로는 재원 부족이 꼽힌다. 이번 대책에 내년 정부 일반 예산은 한 푼도 편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결국 민간 금융회사들이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서민자금의 지원 규모가 커질수록 금융회사의 손실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대출 창구에서 심사를 깐깐하게 하면 정책의 취지는 퇴색되고 결국 저신용자들은 대부업체로 갈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어차피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겐 이자를 얼마간 깎아주는 것으로는 충분한 대책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 상황 악화 등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장사가 부진해서 소득이 줄어들 경우 결국 빚을 갚지 못해 연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칫 정부에서 지원하는 돈을 빌린 다음에 갚는 것은 모르겠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도 제기된다.

최 위원장도 “시장 논리를 중시하는 입장에선 높은 부실률과 도덕적 해이로 인한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저하를 우려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서민금융은 금융과 복지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며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목적을 위해 금융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금융거래 이력이 없어 기존 신용평가체계에선 불이익을 면키 어려웠던 서민들을 위해 ‘관계형 신용평가체계’도 도입하기로 했다. 비금융 정보와 취업 노력, 신용관리 노력, 성실 상환 이력 등 정성적 정보를 반영할 예정이다. 금융 이력 부족자 약 1400만 명이 대상이다.

금융업계에선 정성적 정보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기 쉽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예컨대 취업 노력을 열심히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금융회사나 신용정보회사가 구분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만일 취업 지원서나 이력서 제출 건수 등 정량적 수치를 따질 경우 대출자의 ‘건수 부풀리기’ 같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업계에선 보고 있다.

최 위원장은 “제도 개편은 기존에 형성된 권리와 책임의 재배분을 가져오기 때문에 이해 관계자들의 과도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각계로부터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이해 관계자들의 양해와 동참을 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주정완·정용환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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