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없는 폰감찰 불법"…김태우가 꺼내든 '독수독과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검찰청은 김태우 전 특감반원 등 검찰 출신 특감반원 3명에 대한 고강도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검찰청은 김태우 전 특감반원 등 검찰 출신 특감반원 3명에 대한 고강도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이 독수독과론(fruit of the poisonous tree theory)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섰다. '독이 있는 나무는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독수독과론은 위법한 방식으로 수집된 증거는 위법해 증거능력이 없다는 형사소송법상 증거원칙이다.

김태우 수사관 "靑, 동의하지 않은 내용도 포렌식" #독수독과론 주장하며 "골프장 관련 의혹은 증거채택 안될 것" #휴대폰 임의제출 요구 만연, "법적으로 증거효과 사라질 것 많아"

김 수사관은 1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찰에게 지인 사건을 물어본 혐의만 감찰을 받기로 했는데 청와대에서 골프 관련 부분까지 포렌식을 했다"며 "동의하지 않은 증거자료에 의한 감찰이며 이럴 경우 무죄가 나온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감찰 방식이 적법하지 않았기에 관련 증거의 효력도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김 수사관을 비롯해 검찰 수사관 출신 청와대 특검반원을 검찰로 복귀시키며 3명의 수사관에 대한 비위 혐의(경찰 수사 압력·골프향응 의혹 등)를 통보했다. 대검은 이를 바탕으로 김 수사관의 휴대폰과 골프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등 고강도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수사관의 주장에 대해 "대검 감찰 과정을 통해 판단하면 될 문제"라며 "징계를 피하기 위한 김 수사관의 주장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대검에서 감찰 중인 사안과는 별개로 언론에 감찰보고서를 공개한 김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17일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이 비위 연루 의혹에 반발해 폭로를 지속하는 상황과 관련, "자신이 생산한 첩보문서를 외부에 유출하고 허위주장까지 하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법무부에 추가 징계를 요청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17일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이 비위 연루 의혹에 반발해 폭로를 지속하는 상황과 관련, "자신이 생산한 첩보문서를 외부에 유출하고 허위주장까지 하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법무부에 추가 징계를 요청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은 김 수사관이 주장하는 '독수독과론'을 재판에서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디지털 증거 수사와 관련한 판례는 축적 단계에 있지만 노명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한국 법원은 디지털 수사에 대한 독수독과론을 이론의 본류인 미국 법원보다도 더 엄격하게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수사과정에서 피의자나 참고인이 김 수사관과 같이 검찰의 증거 수집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법리적 지식이 없거나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도 휴대폰의 임의제출을 요구할 때 변호인의 조력 없는 일반인이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디지털 증거 수집 과정의 위법성만 꼼꼼히 따져도 무죄를 받아내는 사건이 많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주영글 변호사(법률사무소 해내)는 "수사기관에서 휴대폰을 제출하라며 자연스럽게 임의제출 동의서를 내미는 경우가 많다"며 "휴대폰에는 의뢰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어 한번 넘어가면 수사기관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수사기관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으려 할 경우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휴대폰의 포렌식 범위를 한정한 임의제출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18일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을 통한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해 7월 1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조국 민정수석(오른쪽)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는 18일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을 통한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해 7월 1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조국 민정수석(오른쪽)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법원은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의 경우 범죄 사실과 관련성이 있는 범위내에서만 압수수색을 좁게 허용하고 있다. 영장 범위를 벗어나는 혐의에 대해 수사 기관이 증거를 확보한 경우 법원이 압수수색을 취소하거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법원은 2011년 이뤄졌던 검찰의 종근당 압수수색에 대해 '피의자의 참여 없이 이뤄진 디지털 증거 수집은 위법'이라며 압수수색 전체를 취소하라고 판결했고, 대법원은 2015년 이에 대한 검찰의 항고를 전원합의체에서 기각했다.

하지만 법원이 압수수색의 관련성을 너무 좁게 해석해 정상적인 수사까지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주지검 군산지청장 출신의 전승수 법무연수원 교수는 2015년 '압수수색상 관련성의 실무상 문제점'이란 논문에서 "최근 판례들은 피의자의 범위를 형식적으로 판단해 압수수색 당시 피의자의 범행과 관련된 증거만 인정하는 등 사건 범위의 관련성을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수사 상황을 법원이 기계적인 잣대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노명선 교수도 "미국 법원의 경우 독수독과론의 예외 이론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한국 법원의 판단은 수사 현실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수사기관의 불만을 의식한듯 대법원도 2018년 2월 "압수한 디지털 증거의 복사나 출력까지 피의자를 참여시킬 필요는 없다"며 디지털 증거수집에 관해 조금은 완화된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단 범죄혐의와 관련없는 압수 관행에 대해선 현재까지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최주필 변호사(법무법인 메리트)는 "디지털 증거 수집과 관련해 이론적으로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내려진 상태는 아니다"며 "형사 사건에서 증거의 채택 여부가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 요소라 여러 학설과 논문이 쏟아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태인·정진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